[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 / 의사 요한]=과연, ‘십자가의 고난’이 없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는 것이라면, 고통없는 인체가 하나님의 작품일까? 무통각증 환자인 의사 요한은 통증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몸을 분석해서, 정보를 통해 건강을 관리한다. 통증이 느껴져야, 그 부분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서, 인체는 그곳을 관리한다. 통증이 없고, 고통이 없다보니, 문제가 생겨도 환자는 건강하다고 착각하면서 결국 큰 병에 이르게 된다. 고통은 곧 건강 지킴이다.
무통각증 환자는 혀를 깨물어도 아프지 않아서, 스스로 잠을 자다가 혀를 깨문다. 또한, 눈을 비벼도 아프지 않으니, 눈의 각막이 손상될 정도로 눈을 문지른다. 다리가 부러져도 통증이 없다. 고통과 통증이 없는 것이 축복이 아니다. 십자가의 고난도 동일하지 않을까? 인생가운데 환란도 없고, 고통도 없고, 모든 일이 환상처럼 잘 된다면, 어느날 ‘소돔과 고모라’처럼 폭발할 것이다.
왜 인생은 ‘성공과 행복’만을 목표로 삼을까? 실패와 불행은 인생 가운데 불필요한 요소일까? 밤이 깊을수록 아침은 찬란하다. 하루를 살면서, 몸이 너무 피곤하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약해졌지…”라고 불평한다. 그러나, 몸은 스스로 피곤하게 하면서, 자연치유 프로그램을 돌린다. 쉬고 싶을 때는 잠을 자야한다. 나는 까페에서 가끔 글을 쓰다가, 갑자기 잠이 쏟아지면, 엎드려서 잔다. 내 몸이 ‘잠’을 원하니까, 자는 것이 정답이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 슬픔을 슬픔으로 인지한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감정의 사유(思惟)인가!! 드라마를 보면서 너무 감정이입을 한 결과물일 수도 있겠지만, 의사 요한을 통해 ‘무통각증 환자의 비애’를 들으면서, 십자가의 고난과 함께 고통의 존재를 재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