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미적분은 ‘하루’다. 국가는 가족단위요, 국민을 보면 국가가 보인다. 가족의 DNA는 혈액으로 연결되듯, 인생의 최소단위는 하루다. 하루의 적분은 인생이다. 오늘, 어떻게 살았는가?
[막 4: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주님의 교육법이다. 주님은 혼자 계실 때 해석을 해주신다. 주님은 부활하시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성경을 풀어주셨다. 그 주님은 지금도 성도들의 마음을 두드리며, 생활속에서 자주 친근한 사물로 비유하고, 사건으로 말씀하신다. 성령의 미세한 소리는 사물속에 섞여서 들려온다.
드라마를 보다가,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찬양을 하다가, 기도하다가, 갑자기 옛날 일들이 떠오르거나,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거나, 주님은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서, “남편을 데려오라”고 요청하듯, 개인 사생활을 개입하신다. 주님은 “끼어들기”에 선수다.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었다면, 주님인지 유심히 확인해야한다. 양은 그 목자의 음성을 안다.
계시(啓示)는 열려서 보이는 것이다. 주님이 열어주시면, 같은 사건도 다르게 보인다. 마가복음 4장과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농사짓는 법에 대한 것이다. 씨를 뿌릴 때, 옥토밭에 뿌려야 소출이 많으니까, 좋은 밭을 잘 골라야한다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평범한 비유속에 천국의 신비가 들어있다.
그처럼, 생활속에서 모기처럼 사소한 사건적 계시가 펼쳐지는데, 겨자씨처럼 매우 작은 계시인데, 그 속에 천국의 신비가 들어있고, 국가의 운명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당했고, 롯은 천사들을 잘 대접하다가 구출을 받았다. 인생사 어떻게 될지, 누구도 모른다.
새벽에 일어나면, 하나님을 불러야한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전에 하루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하나님께서 언제 찾아오셨는지 깊게 성찰할 줄 알아야한다. 오늘은 카톡으로 “말씀과 찬양과 기도는 우리 영혼의 필수 3요소”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찬양의 시간을 특별히 내서 주님께 나아갔다.
꿈에 내 발바닥에 못이 깊게 박혀 있었다. 실족(失足)을 하게 되는 못이 나는 발바닥에 박혔고, 주님은 발등에 박히셨다. 주님은 ‘실족의 십자가’를 직면하고도 하나님을 향해 그 믿음을 버리지 않으셨다. 어떤 실족의 상황에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성도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의 삶을 살아야한다. 꿈속이지만, 발바닥에 박힌 못의 고통이 극심했다. 어쩌랴. 그 고통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알아가는데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