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을 때는 중요인물의 변화에 주목해야한다. 소설을 읽을 때, 감정이입을 하면서 사건속에 빠져든다. 그처럼, 성경은 인물속에 자신을 적용해야한다. 인물속에 자신을 적용할 때, 첫 인물은 무엇보다 베드로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사람이다. 예수님은 본래 나사렛에서 살았다가 가버나움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베드로의 집에서 가정교회 사역을 펼치셨다. 마태복음 4장과 마가복음 1장에 자세히 나와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있던 갈릴리 해변가로 가셔서 베드로를 직접 만나서 전도하셨고, 베드로가 살던 집에도 방문해서, 장모의 열병을 고쳤다. 베드로가 데릴사위처럼 아내의 집에서 산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추측일 뿐이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같이 살았으니, 어쩌면 베드로와 안드레가 가버나움에 집을 사서 부인과 함께 거주한 것일 수도 있다. 배를 가진 베드로는 경제력을 갖춘 계층이다.
“배”는 고기를 잡던 용도에서 ‘설교와 이동’의 수단으로 변경된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던 직업에서 사람을 만나는 직업으로 바뀌었다. 누구를 만나느냐로 이렇게 운명이 바뀐다. 예수님을 만나야한다. 이제, 복음서속에서 주님을 만나야한다. 복음서는 일기장과 같다. 베드로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넣자. 그리고,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나의 집’에 들어오신 주님으로 바뀐다. 일기장에 기록되듯, 생활속에서 주님이 자신의 집에, 방에, 직장에, 사생활에 개입하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생활신앙은 사생활을 주님과 공유하는 것이다. 감정활동을 주님과 함께 논의하고, 상의하고, 사소한 것까지 주님과 호흡하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면 사랑하는 연인은 서로 통화해서 말하고,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서로 전화해서 통화한다. 이러면 이렇다고, 저러면 저렇다고 서로 통화한다. 복음서를 보면, 베드로와 주님은 사소한 것까지 서로 대화했다. 예수님이 성전세 5만원을 내지 못했을 때, 그 사실을 먼저 안 것은 베드로였고, 결국 베드로가 그 문제를 해결한다. 주님과 사연도 이렇게 사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눈을 열자!! 주님이 노크하신다.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이 영혼의 구원사업이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 1억배 행복하고, 즐겁다. 대통령의 전화를 받으면 영광이다. 하나님의 전화를 받는 것은 얼마나 큰 영예일까? 주님을 만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며,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