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칼럼]=우리는 모순(矛盾)의 정의에 갇혔다. 세상적 악인에 대한 징벌을 요구하면서도, 자신은 들키지 않는다면 ‘정의로운 자’의 판단을 받고 싶어한다. 즉, 판사의 자리에 앉는 것이다. 판단하는 자가 그 판단으로 판단받는다. 이것이 성경적 정의다. 세상적 법률은 검사에게 기소권을 주고, 판사가 죄를 판단하며,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이 없다. 드라마를 통해 보여지는 정의론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저스티스에서 서동석 검사가 이제 법무부장관이 될 차례다. 서 검사의 딸 서연아는 좌충우돌 정의로운 검사다. 자신의 아버지가 7년전 아현동 살인사건과 연결된 것을 알게 됐다. 덫에 빠졌지만,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서 사건 자체를 은폐했다. 그것 때문에 피해자는 속출했고, 서동석 검사는 자신의 죄에서 면피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연아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
사람중에서 과연 의로운 자가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이미 범죄자가 되어있다. 부자는 부자라는 이유로 가난한 자로부터 이미 고소를 당한다. 부자를 싫어하는 자는 부자를 향해 ‘멸망과 저주’를 퍼붓는다. 가난한 자들이 판사의 자리에 앉는다면, 부유한 자들은 모두 감옥에 갈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다. 이것이 사람의 정의다. 사람은 정의롭지 못하며, 정의를 판단할 자격이 없다.
송우용에게 정의는 ‘가족’이다. 안전하면, 그것이 정의다. 가족을 해치면 그것은 불법이며, 악(惡)이다. 선악의 개념이 기준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보편적인 정의는 사회의 기준에 따라 정해질 것 같아도, 대부분 자신의 정의론에 의해서 판단할 뿐이다. 송우용 회장처럼, 자신의 가족이 연루되면, 정의의 폭은 변경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앞에 낮아져서, 정의로운 하나님께 사람의 죄성을 회개할 뿐이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자신의 죄에서 구원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광화문에 가면, 범죄자를 폭로하는 시민단체가 많다. 그들의 현수막과 구호(口號)를 듣고 있으면, 대한민국은 범죄집단이다. 보수는 진보를 향해 쓰레기같은 말들을 늘어놓고, 진보는 보수를 향해 막말을 쏟아낸다. 젊은 진보와 늙은 보수는 한지붕 아래 가족일 것인데….. 모든 사람의 말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감옥에 있을 것이다.
정의와 심판이 그대로 실현되면, 세상은 멸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의의 칼을 긍휼의 칼집에 넣고,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참회하는 길을 걸어야한다. 죄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여, 자신이 자신의 죄를 폭로하자!! 오직 성령께서 각 사람의 심령가운데 행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