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몸이 아파서 집안에 머물렀더니, 인생의 약함이 물과 같고, 빈들의 풀처럼 무상함을 깨닫는다. 찬송가의 곡조가 내게 위안이 되며, 한술 밥을 먹을 수 있는 편안한 오후의 시간이 좋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
십자가는 향후 기독교를 크게 둘로 나눌 것이며, 나눴고, 나누고 있다. 십자가 무용론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와 십자가 구원론을 주장하는 보수주의로 나뉘었다. 개혁주의는 ‘이단들’에 속한다. 이들은 세속적 종교단체인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제도가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십자가와 세상을 결합한 새로운 종교교리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무엇인가? 이 시대에 십자가는 무익할까?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제자들에게도 십자가를 지고서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고 하셨다. 이 시대에 요청되는 십자가는 과연 무엇인가? 나는 오늘, 지금,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가?
고린도전서 2장 1~2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편지했다. 또한 바울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회상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道)이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지혜의 나무와 연결된다.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지식의 나무를 따먹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게 했다. 세상지혜로 행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 수 없다. 둘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이다.
능력많음도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없음도 성령의 능력이다. 복음을 전하고, 행위로서 말씀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십자가’로 귀결된다. 십자가는 고통과 두려움과 떨림과 무서움이다. 그 미래를 알 수 없는 참혹함이다. 예수님은 장례식이 준비되지 않았다. 죽임을 당한 후에야, 장례위원장으로 택정받은 아리마대 요셉이 나타나, 죽음을 내걸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다.
금요일 저녁, 장례식은 급하게 진행됐다. 토요일이 안식일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일요일에 여인들이 다시 무덤을 찾았고,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모두 계획에 없던 일이다. 장례식도 부활도 계획없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십자가의 지혜는 오직 성령께서 행하신다. 사람은 단지 조연이며, 소품에 불과하다.
우리는 멘토링에 매우 익숙하다. 특히 ‘성공 멘토링’에 길들여져 있다. 창세기 3장 사건이다. 하나님은 선악지식의 나무를 ‘금지’했고, 뱀은 선악과를 따먹도록 허락했다. 뱀이 허락하니,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면서 따먹었다. 나는, 우리는 누구의 멘토링을 받고 살아가는가? 세상 것들을 추구함에 있어서, 인생의 청춘을 그곳에 투자할 경우, 우리의 영혼은 허망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십자가는 곧 영혼의 거룩함이다.
[마가복음 8장]
31.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의 사명을 깨달은 베드로가 즉시 십자가를 반대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를 거부했다. 베드로가 기다린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물리치고, 살아서 권력을 쟁취하는 세속적 그리스도였다. 그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엄하게 꾸짖었다.
이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헤르몬산에 오른다. 그곳에서 만난 인물이 엘리야와 모세다. 엘리야는 부국강병을 위해서 바알종교를 수입해서 하나님의 신앙을 없앴던 아합시대 선지자요, 모세는 이집트의 황태자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택한 민족의 영도자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 시대 권력과 영광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한 자들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세상권력과 부귀영화를 얻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고, 세상 것을 버리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무엇을 취할 것인가?
인생을 살면서, 가진 것이 많아서 평안과 안락과 여유와 행복을 누린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축복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불안과 떨림과 불행과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도 성령의 은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존재양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니, 모든 고난은 십자가의 감정을 선물한다. 오직, 십자가의 신비를 믿을지라!! 쓸쓸함이 바람처럼 불어올 때, 하나님이 찾아오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