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똘똘 뭉쳤다. 로마군대의 핍박에도, 유대교의 탄압에도,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점점 불어났다. 그때, 하나님은 바벨탑을 허물 듯, 제자 공동체를 균열시키신다. 사도들이 옥에 갇히고,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북쪽 변방에 작은 교회가 생겼다. 안디옥 교회다. 글쎄, 안디옥 교회를 통해, 율법과 상관없는 ‘어린양의 신부’가 성장하고 있었다. 어린양의 신부는 곧 ‘교회’다.
공관복음을 읽으면, 드러나지 않는 ‘어린양의 신부’가 요한복음에서는 명확히 나타난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교회의 공동체’를 남기셨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유일한 생명의 공동체는 교회가 유일하다. 어떤 지식도 공동체를 침략할 수 없다. 공산주의가 교회의 공동체를 해체하려고 시도하지만, 부활의 주님이 살아계시니, 교회는 영원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했던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요? 바로 공동체예요. 교회는 성도들이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의 생명조직입니다. 아시죠?”
“저는 여기 교회 말고 갈 곳도 없어요”
1부 예배가 끝나고, 2부 예배를 기다리는데, 어떤 성도가 내게 와서, 내게 권면한 내용이다. 루터의 성경번역이 독일어로 되었지만, 그 시대 백성들은 독일어도 몰랐다는 것이다. 언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았을까?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돕고, 서로 챙기고, ‘상부상조의 향약(鄕約)과 품앗이’처럼 더불어 살아가면서 공동체를 통해서 복음이 살아났다는 것이다. 나는 “아멘”으로 화답했다.
사도 바울은 성령에 이끌려서 바나바와 함께 선교여행을 떠났다. 중간에 청년 마가는 힘들어서 도망쳤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5개월, 이고니온에서 5개월, 루스드라에서 4개월, 더베에서 4개월, AD 46~48년까지 2년간 1차 선교여행이다. 바울은 4개의 초대교회를 세우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바로, 성경을 보는 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공동체 신앙생활을 심어주고, 바울은 성령께 모두 위임하고 그곳을 떠난 것이다. 복음의 옥토밭은 곧 ‘사랑으로 잉태한 공동체의 교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AD 50년에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썼다. 예수님이 바울을 통해 교회 신부들에게 보내는 첫번째 사랑의 연예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