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 22:21)
여기서 ‘가이사’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면서 루비콘강을 건넌 그 가이사는 아니다. 그 가이사는 박정희 대통령처럼, 진시황제처럼, 측근에 의해 암살당했다. “브루터스 너마저!!”. 김재규의 총탄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다. 진시황제가 죽고 이후 유방과 항우의 대전쟁이 있었다.
가이사가 죽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전쟁을 벌인다. 낭만적이고 따뜻했던 사랑의 사람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 7세와 ‘다소’에서 첫만남을 갖고, 사랑에 빠지고, 냉혈한 옥타비아누스는 BC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다. 그가 바로 위대한 로마의 첫 황제이며, 팍스 로마(로마의 평화)를 선언했다.
누가복음 1:2에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라고 했는데, ‘가이사’는 황제칭호로 붙인 것이고, 아구스도는 ‘존귀한 자’로서 옥타비아누스에게 붙인 이름이다. BC4년 옥타비아누스가 로마황제로 있던 그때 예수님은 식민지 이스라엘에 태어났다. AD14년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는 죽고, 2번째 황제 티베리우스가 등장한다. 이 황제가 바로 ‘데나리온’에 그려진 초상화 주인공이다.
티베리우스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던 그 시대 황제이며, 빌라도 총독과 친분이 두터웠다. 빌라도는 티베리우스의 최측근이며, 충복이었다. 티베리우스는 AD14~37까지 통치하고, 칼리굴라가 정권을 계승한다. 빌라도는 AD36년에 숙청당했다.
가이사는 황제의 권한은 있었으나, 황제는 아니다. 가이사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최초의 황제가 되었고, 첫 황제 재임시절 예수님이 태어났다. 그리고 2번째 로마황제인 티베리우스 시절에 예수님은 3년의 사역을 펼치셨다. 십자가 사건이 있던 그때 티베리우스 황제는 70세가 되어, 정권에서 물러나 카프리 섬으로 휴양을 떠난다.
7년후, 양자인 칼리굴라가 베개로 그를 질식시켜 죽였다. AD37년, 3번째 황제가 등극했다. 이때, 다멕섹에서 바울의 회심사건이 일어난다. 로마제국은 피로 물든 짐승의 권력이고, 예수님의 나라는 피로 희생하는 인자의 권력이다. AD37년 칼리굴라와 바울의 극단적 대비는 예수님의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지 나타낸다.
3년후 AD40, 칼리굴라는 자신의 동상을 예루살렘 지성소에 세우겠다고 공표하면서, 유대 청년 1만명과 격돌한다. 1년후 AD41, 칼리굴라는 경호원 급료 미지급 사건으로 연극관람 도중 측근 경호원에게 암살당했다. 이때 칼리굴라에게 여동생 아그리피나가 있었는데, 그녀의 아들이 바로 네로다.
칼리굴라의 삼촌 클라우디우스는 절음발이며 귀머거리였다. 클라우디우스는 41~53년까지 통치하며, 조카인 아그리피나와 결혼한다. 마치 예수님 시절 헤롯 안티파스와 결혼한 헤로디아와 흡사하다. 헤로디아에게 딸이 있었고, 아그리피나에게는 아들 네로가 있었다. 그 네로가 바로 미치광이 황제다.
옥타비아누스(1대) – 티베리우스(2대) – 칼리굴라(3대) – 클라우디우스(4대) – 네로(5대)
네로 황제가 죽던 AD67년에 그 즈음 사도 바울과 베드로까지 모두 순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