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장에는 성전멸망의 말세비유와 노아의 홍수심판 비유가 나온다. 홍수심판이 되기전에는 흥청망청 살았다. 때가 되니, 배를 준비한 노아와 그 가족과 가축은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천국은 열처녀와 같다”고 했다.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지혜롭다. 지혜로운 다섯은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했고, 미련한 다섯은 등만 준비했다. 여기서 ‘기름’은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그것이다. 노아는 홍수심판을 대비해서 ‘배’를 120년동안 준비했다. 대부분, 그 때가 올 것을 믿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온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맞으러 나오라고 하니,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이 꺼져가는 것을 알았고, 지혜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나눠달라고 부탁한다. 신랑을 맞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미련한 다섯처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홍수가 쏟아지는데, 그제서야 배를 준비하면 늦다. 주일예배에 참석하려면, 토요일부터 준비해야한다. 예배에 갈 마음이 없으니까,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늦게 오니까, 오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지혜는 곧 믿음에 있다.열처녀 비유를 자세히, 깊게 음미하면,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것이 신랑이 온 이후에 결정되지만, 실상은 준비하면서 결정됨을 넌지시 말해준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은 반드시 있다. 운명의 그 날이 되면, 지혜로운 다섯과 미련한 다섯은 구분될 것인데, 그 결정권이 ‘등의 기름’으로 달라진다. 신랑은 ‘기름의 유무’로 신부를 취한다. 결국, 준비하는 지금, 기름을 준비해야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오늘, 믿음으로 신랑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맞이하며 살고 있는가? 그때가 되면 복궐복으로 사는가? 비행기를 타려면 티켓을 사야하듯,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으려면 기름의 티켓을 반드시 미리 구입해야한다.
노아가 배를 준비하듯, 신랑되신 예수님을 위해 ‘사랑의 기름’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 한다. 주님은 “3일후 살아날 것이다”고 수십번, 자주, 말씀하고 교육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믿었다면, 막달라 마리아가 실종된 시체를 놓고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덤속 예수님의 시체를 한번 더 보려고 갔다가 엉겹결에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이다. 결국, 등불의 기름은 “믿음”의 문제다. 믿음이 있다면, 그 약속을 의지하고 준비할 것이다.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신다는 그 믿음이 없으니까, 다른 신랑을 맞는 것이다. 신랑은 오직 예수님이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마26:46)
운명의 때가 갑자기 왔고, 모두 도망쳤다. 오직 예수님만 십자가를 맞았다.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는다. 부활을 믿으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록 3:20)
베드로는 주님앞에서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약속했지만, 못했다. 왜 베드로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사건적으로 맞지 못했을까? “보라, 신랑이로다”는 그 외침이 베드로의 생각대로 오지 않았다. 하잖은 계집종을 통해서 “신랑을 맞으라”고 미세하게 들려왔다. 3번이나 맞으라고 했지만, 베드로는 그것을 듣지 못했다.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마26:69)
신랑 신부 비유에서 왜 신랑이 미련한 다섯 처녀들을 모른다고 했을까? 이 부분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한다. 열처녀는 모두 신부가 되려고 신랑을 기다렸는데, 다섯 처녀만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못 들어갔다. 기름 때문이다. 즉, 기름이 신부의 자격기준이다. 신랑이 오기전에, 결혼식이 열리기전에, 우리는 신랑이신 예수님과 연애를 해야한다. 그것이 곧 성령의 기름이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을 신랑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데, 예수님을 신랑으로 어찌 맞으랴!! 베드로는 겟세마네에서, 계집종앞에서, 부활의 무덤에서 모두 주님을 맞지 못했다. 디베랴 호수로 낙향했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다시 “사랑의 기름”을 나눠주셨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요, 사랑이다. 신부의 사랑도 결국 신랑이 준비한다. 라헬은 7년동안 야곱을 맞으려고 준비하고, 야곱도 라헬을 맞으려고 7년을 준비했지만, 혼인잔치에 첫날밤을 치뤘더니, 언니 레아였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창29:25)
혼인잔치가 끝났고, 첫날밤도 치렀는데,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다. 야곱은 혼인잔치를 다시 치루면서, 라헬을 아내로 맞았다. 사랑이 있으면, 주님을 신랑으로 맞을 수 있다. 사랑의 기름이 없으면, 방법이 없다. 마태복음 25장 신랑신부 비유에서 2번째 혼인잔치가 다시 열렸다는 내용은 없지만, 야곱처럼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베드로에게는 주님이 사랑의 기름을 다시 주시면서, 새롭게 신부로 맞아줬다. 아멘!! 신랑의 온유한 성품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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