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장에는 성전멸망 예언이 나온다. 예수님은 이 예언을 4명의 사도들에게만 말했다. 마가는 베드로에게 들었을 것이고, AD55~56년에 마가는 그것을 공식문서로 기록했다. 이때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다.
마가는 1차 전도여행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버리고 도망쳤고, 2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의 거부로 바나바와 함께 구브로에 갔다. 그때 마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씁쓸한 심경은 광야에 버려진 느낌이었으리라. 그때가 AD50년이다.
누군가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을 때, 하이데거가 말하듯, 피투성(被投性)의 던져짐은 피투성이로 던져지듯, 고통스럽다. 그때 성령이 임재한다. 마가는 바울의 강한 거부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의 기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5년후 최초 복음서가 출간됐다.
만약, 마가가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했다면, 마가복음을 쓸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쓰여지는 시간과 공간이 성령을 통해 주어진다.
마가는 바울과 결별하면서 베드로와 함께 마가복음 출간에 전념하였고, 그 마가복음이 이후 마태복음의 초석이 되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영향을 미쳤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불을 벗고 알몸으로 도망친 것으로 추정된 그 마가가 복음서의 작가가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부끄러운 과거는 오히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은혜를 준다.
마가복음 13을 읽으면서, 우리는 반드시 “이 예언은 성취되었는가”를 물어야한다. 예언(豫言)과 계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전멸망 예언은 AD30년에 있었고, AD55년에 문서로 출간되었고, AD70년에 성전은 멸망했다.
AD64년에 헤롯성전은 완공되었는데, 완공된 이후 이스라엘은 ‘환호의 잔치’를 열었으나, 건축공사가 끝나면서 대량 실업에 빠지고, 민심은 흉흉하면서 시카리당과 젤롯당이 서로를 향해 내분에 휩쌓인다. 로마제국은 이스라엘 함락을 공식화하는 시점이다. AD70년에 로마제국은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다. 예수님의 성전멸망 예언은 성취되었다.
이 예언의 목적은 무엇인가? 초반부에 분명하게 나온다. 헤롯성전을 건축하고, 건물을 통해서 그 영광을 드러내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으로 백성들을 제압하니, 예수님의 공동체는 상대적으로 가려진다. 헤롯성전과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헤롯성전이 결국 무너지니, 제자 공동체를 통해 세워진 이방인 교회들이 빛을 보게 된다. 이 예언의 목적은 건물성전을 중심하지 말고, 공동체 교회를 이루라는 것이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고 했는데,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고, 비로소 사람들은 마가복음을 통한 예수님의 예언이 얼마나 진실한지 경험했을 것이며, 믿는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의 영광과 권위가 더욱 드러난다. 이 예언은 종말의 심판을 예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마가복음이 기록된 그 당시에 독자들이 생각한 ‘성전멸망’은 헤롯성전의 멸망이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제대로 인지해야한다.
마가복음 13장의 말세예언은 AD55~69년까지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졌다. AD70이 된 후에야 그 예언이 성취됐다. 마태복음은 AD60에, 누가복음은 AD63년에 기록되었다면, 역시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을 통한 그 예언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이라고 표현한다. 로마군대를 의미한다.
끝으로, “멸망의 가능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으진저)”라고 되어있는데,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가 마가의 기록인지, 마가복음을 옮겨적으면서 새롭게 들어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초 원본에 기록되었다고 한다면, AD55년에 헤롯성전에 로마황제의 우상숭배가 있었다고 봐야한다. 이것은 로마황제에 대한 공식적 숭배를 의미한다.
이 예언을 ‘회교의 황금서원’ 건립기점으로 보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무시하고, 헤롯성전멸망 예언이 갑자가 황금서원으로 둔갑해서 새로운 예언성취로 풀이한 것은 ‘혹세무민’(惑世誣民) 사상에 불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