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가 나온다. 그 비유에 앞서, 두 주인을 섬기는 하인 비유가 나온다. 두 주인은 곧 하나님과 재물인데, 하나님과 맘몬 신을 뜻한다. 엘리야가 갈멜산 전투에서 백성들에게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결정하라”고 했듯이, 인생은 누구나 심중에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결정해야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맘몬 신은 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맘몬 신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이 아래에 위치한다. 자색옷을 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나사로와 맘몬신을 추앙한 부자의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드라마를 통해 재물을 축적한 인물은 항상 ‘탐관오리’이며, ‘탐심이 가득한 구두쇠’로 나온다. 반면, 현실속에서는 그 탐욕이 드러나지 않는다. 맘몬신은 그저 돈으로 지갑속에 들어있고, 착한 마음속에서 가만히 앉아있다. 돈은 2가지 속성을 갖는다. 지배하는 속성, 섬기는 속성이다. 돈을 가지고 남을 지배하려고 하면, 그것은 탐욕이다. 권력을 가지고 남을 지배하려고 하면 그것이 짐승의 권력이다.
돈과 권력은 필요하다.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칼은 필요하다. 칼을 가지고 요리를 하고, 수술을 하면 매우 유용하다. 반면, 칼을 이용해서 사람을 위협하면 강도다. 칼로 사람을 죽이면 살인무기가 된다. 돈과 권력으로 무엇을 하느냐이다. 섬김의 도구로 돈과 권력을 활용하도록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이 인자의 권력이다. 예수님은 권력을 갖고 낮아짐으로 섬기셨다.
부자청년 사건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것은 부자에 대한 것이 아니고, 마음이 가득찬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변형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왜, 공동묘지의 군대귀신 들린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재물의 맘몬 신에 들린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부자청년을 ‘돈이 많은 자’로만 생각한다. 아니다. 맘몬신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부자청년이다. 그가 맘몬신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돈을 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을 것이다. 맘몬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귀신보다 재물귀신이 훨씬 강력한 것을 알 수 있다. 돈의 힘은 상당하다. 예수님은 군대귀신도 물리쳤고, 광풍도 물리쳤는데, 예수님을 찾아온 그 부자청년속에 있는 맘몬 신을 물리치지 못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구분해서 바치라고 말씀하셨듯,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한다.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한다. 하나님의 것이면서, 가이사의 것이 될 수는 없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세상에도 적당히 빠져서 살면, 과연 그 영혼은 어디에 속했을까? 어딘가에 속했을 것이다. 결정적일 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스스로 확인해야한다. 예수님이 부자청년에게 “모든 부동산을 처분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따르라”고 하니까, 부자청년은 재물을 따라갔다. 그것으로 부자청년의 소속이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과 맘몬신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향유옥합이다. 베다니 마리아는 3000만원에 해당하는 향유옥합을 주님께 드렸다. 장례를 미리 예비하기 위함이다. 그때 가룟유다는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속내는 그것을 취하기 위해서다. 결국,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30에 팔아넘겼다. 맘몬신이 가룟유다 심중에 있다보니, 돈을 받고 주님의 은신처를 유대 제사장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재물과 권력은 축적(縮積)과 군림의 도구가 아니다. 재물과 권력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청지기 정신을 가져야한다. 청지기(聽直)는 올바르게 듣고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는 하인을 뜻한다. 인생은 결국 죽는다. 죽으면 모든 소유는 상속된다.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소유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맡긴 것을 관리하는 자의 소명으로 살아가야한다. 그렇게 하면, 욕심이 줄어든다.
기억하라!!
소유는 지배욕, 통제, 억압, 착취, 약탈, 탐욕으로 변질되며, ‘승리’의 이름으로 둔갑한다. 지나치게 갖고 있는 자들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정의는 아니다. 끝날에 모두 내려놓고 갈 뿐이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신실함을 갖춰야한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사도 바울은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경고한다. 있는 것들을 ‘돈과 권력이 있는 것’을 말하고, ‘없는 것들’은 십자가를 뜻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를 통해서 죄문제를 없애고,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 주님은 성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보이셨다. 십자가는 ‘없는 것’의 대명사이다. 모든 것을 버린 그 십자가는 곧 ‘모든 있는 창조주’의 위대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