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준영 재벌가 2세의 죽음, 홍유라 판사의 아들, 언론사 기자들이 집중 취재에 나섰다. 자살심증을 홍유라 판사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의인 아들로 포장된 ‘거짓 진실’을 받아드려야한다. 그녀는 굳게 결심하고, “부검”을 결정한다. 부검은 자식을 2번 죽이는 것인데, 이제 취재기자들이 몰렸고, 준겸이는 3번째 칼질을 당할 것이다.
“죽음”앞에 반응하는 사람의 행위는 “먹는 것”이다. 살아있으면, 먹는다. 죽은 자는 말도 없고, 먹지도 못한다. 그와같이, 인생의 영혼이 살아있으면, 양심을 먹고, 진실을 찾고, 진리의 말씀을 먹는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려는 선한 양심의 소리가 곧 영혼의 음식이다. 영혼이 살아있다면, 그 말씀을 주식으로 삼게 된다.
‘사랑은 뷰티풀’에서는 죽음과 삶을 극적으로 대비하려고, 김청아의 집에서는 아빠의 익살스런 ‘아이스크림 뺏어먹기’와 ‘세발낙지’가 등장했고, 홍유라 판사는 “쥬스가 달다”는 문장으로 죽은 자를 애도했다. 김청아의 집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청아의 마음은 슬픔의 해저다.
한국교회에 대한 직격탄을 날린다. 김설아 아나운서는 김청아의 언니, 노골적으로 재발가 며느리가 되려고, 압구정에 있는 교회를 다닌다. 그곳은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회인데, “젖과 꿀이 흐르는 교회”로 불린다. 김설아는 “하나님을 믿지는 않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믿어요”라고 한다. 교회에 하나님은 없고, 세상의 명예와 권력만 있다면, 그곳은 어디인가? 반어적 표현으로 교회를 비판하는 ‘쓴소리’다.
김청아과 선우영애(엄마)는 세상물정을 너무 모른다. 통신사에 조회하면 문자내역과 전화기까지 추적당하는데, ‘자살’은 뻔히 드러날 상황이다. 홍유라 판사도 자신의 아들이 자살로 죽은 것을 이미 짐작했고, 양심을 속이지 않기 위해서 부검을 결정한 것인데, 홍화영(동생)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극적으로 돌이킨다. “조카를 2번 죽이고 싶지 않다”고 하니, 홍유라 판사는 뻔한 세상의 거짓말에 자신을 속여야했다. “의인 판사의 의인 아들” 스토리다. 수사가 종결되자, 경찰서에 자수하러 나타난 모녀(김청아와 선우영애)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형사에게 이실직고를 하려고 하는 그 찰나에 옆에는 기자가 듣고 있다.
그때, 엄마가 “핸드폰을 숨긴 것이 마음에 죄책감이 들어서, 자수하러 왔어요”라고 둘러댄다. 그러자, 형사는 “그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기자들은 팩트를 빼고, 소설을 쓰면서 클릭 수를 늘리려고 한다”면서 핀잔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형사는 핸드폰을 건네준다. 그렇다.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 두 사람이 살았다. 김청아, 그리고 홍유라 판사다. 홍유라 판사는 왜 자신의 아들이 자살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자신의 아들이 할머니를 죽인 뺑소니범인 것과 관련있는데, 어쩌면 홍유라 판사가 저지른 어떤 범죄를 자신의 아들이 알았을 것이다. 양심은 결국 죄를 토설하게 한다.
홍유라 판사는 과연 자신의 아들이 ‘의인 아들’로 보도되면서, ‘의인 아들의 어머니’로서 영광을 얻기를 원하는가? 알고보면, 속은 썩었고, 죄인 아들을 둔 죄인 어머니인데,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보여지는 것들이 진실을 가리는 매스컴의 시대에, ‘의인 영웅’의 보도에 현혹되지 말아야한다. 명예롭고, 부풀려진, ‘거짓된 영웅’은 ‘실체적 진실’이 아니다. 죄인으로서, 자신의 양심을 인정하는 것이 ‘사람다움’의 인간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