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길 유(遺) 귀한 것을 남기기
인사유명(人死留名)이다. 사람은 죽어서 그 이름을 남긴다.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 십자가 예수”의 그 이름을 ‘구원의 증표’로서 남겼다. 인사유명(人死留名)에서 유(留)는 유(遺)와 뜻이 같다. 유언(遺言) 유서(遺書) 유가족(遺家族) 유전자(遺傳子) 후유증(後遺症)에 유(遺)가 사용된다. 遺는 귀할 귀(貴)와 천천히 걸을 착(辶)이 합쳐졌다. 길을 걷다가 남겨진 귀중품이 남길 유(遺)이다. 인생의 발자취가 바로 ‘貴와 辶’이다.
얼마전, 내게 남겨진 오래된 사진들을 정리했다. 내가 태양처럼 섬긴 얼굴이 있었고, 달처럼 사랑한 장소였고, 별처럼 소중한 추억들이 있었다. 별과 달과 해가 빛났던 그 사진들은 내게서 어두워졌다. 그때, 그곳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드러났다. 너무나 깜짝 놀랬다. 둘둘 말려서, 사진들속에 들어있었는데, 예수님 얼굴이다. 어찌 반갑던지요. ‘나의 무덤’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이다. 기억이 났다. 교회에서 바자회를 했는데, 누군가 내놓은 그림이었다.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은 그 초상화를 내가 비싼 값에 샀다. 그 예수님이 나를 향해 해맑게 웃는데, 알고보니, 내 생일 다음날 그려진 그림이다. 신비한 일이다.
하루를 살면, 써야할 글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것들을 쓰다보니, 내 인생은 책속에 묻혔다. 너무 많은 글들을 쓰다보니, 무엇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썼던 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새롭게 글을 쓰는 일이나, 썼던 글을 새롭게 정리하는 것이나, 결국 같은 일이다. 내가 걸어왔던 글들의 발자취가 나를 증명한다.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10년전, 나는 거의 죽었다. 그때, 나는 번뇌(煩惱)를 망각하기 위해 글을 썼고, 절망을 지면에 토해냈다. 내게 드라마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드라마가 끝나면, 나는 드라마 에세이를 썼다. 그렇게 인생을 살다보니, 나는 모든 사람과 사건이 글로 보였다. 무작정 썼다. 요한복음 9장 맹인의 결핍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적이 되듯, 내 인생의 절망이 내게 작가로서 거름이 되었다.
어느날, 어떤 출판사 사장이 내게 말했다. “썼던 글을 묶어서 보내줘요. 전자책으로 만들어드릴께요” 그때부터, 나는 책에 매료됐다. 글을 묶으면 책이 된다는 이 단순한 공식이 나를 ‘책의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글이 100편이 있으면, 책이 1권이 된다. 그런데, 글이 1000편이 넘어가면, 책은 10권이 아니고, 100권이 된다. 글이 순열조합처럼 서로 섞이면서, 다양한 책들이 나올 수 있어서다. 글이 1만편이 넘어가면, 책은 무한정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오늘 나의 삶이 한편의 글로 기록된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뒤 돌아보면, 남겨진 길이 곧 글이다. 남길 유(遺)는 지나온 인생길에 가장 귀한 것(貴)을 말한다. 오늘도 나는 한편의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