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보약보다 밥이다. 매일 먹는 밥이 힘의 원천이다. 나는 날마다 아침에 ‘현미 시리얼’을 먹는다. 점심과 저녁도 꼭 챙겨 먹는다. 내 영혼은 매일 복음서를 1장씩 읽고, 묵상한다. 십자가의 속도는 느리다. 책 1권을 읽어도, 1문장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요한복음 14장을 읽었다.
표적의 책은 7가지 표적사건을 예시한다. 3가지는 예수님의 사건, 4가지는 인물이다. 핵심증인으로 나사로, 38년 베데스다 환자, 실로암 맹인, 왕의 신하 아들이다. 왕의 신하 아들은 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을 일으킨 표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일으키신 부활을 상징한다. 7가지 표적은 “목표”를 가르키는 “화살표”다. 표지판을 따라 진행하면, 목표가 나올 것이다. 그곳에 주님이 계신다. 십자가는 곧 주님과 일체다.
주님은 14장 1절에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주님이 각각 구분된다. 이것 때문에 도마와 빌립이 ‘질문’을 던진다. 당연하다. 도마는 “예비할 거처”에 대해 묻고, 빌립은 “하나님”에 대해 질문한다. 이것은 “예수님”을 표적으로 본 것이다. 표적의 책에서 “표적”은 예수님을 가르킨다.
그런데, 영광의 책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일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상징이 아니다. 요한복음 14장은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고 말씀한다. 분리될 수 없는 완전한 일체다. 사람의 이름과 그 육체는 분리될 수 없듯, 하나님과 예수님은 분리될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얼굴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땅의 하나님이다.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나님과 예수님은 분리될 수 없다. 예수님은 믿는 성도들에게 놀라운 축복을 한다. 예수님과 성도의 일체관계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체이듯, 성도와 예수님이 일체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와 같다. 성도를 보는 자는 예수님을 보는 자와 같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몸과 마음으로 거주하신다. 교회에 다니는 지극히 작은 자가 하나님의 몸된 성전이며, 창조주의 육체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김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교회 담임목사가, 초신자가,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옆좌석에 앉은 성도가,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지도자가, 예수님의 향기 가득한 ‘인격의 초상’이다. 교회 모든 성도가 주님과 직결된 직통전화다. 내가 그렇다면 상대도 그렇고, 상대가 그렇다면 나도 그렇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약속이다.
[요한복음 14장]
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성령과 악령은 항상 사람의 마음에 임한다. 그래서, 사람은 깨어 긴장해야한다. 진리의 영, 성령을 받아야한다. 성령을 받으면, 십자가의 마음이 함께 임하며, 예수님의 사랑과 그 말씀이 생각난다. 악령(惡靈)은 ‘거짓 계시’와 ‘거짓 영성’과 ‘거짓 감동’으로 속여서, 자신을 교만하게 하고, 남보다 자신을 높게 여기며, 군림의 권력을 잡게 한다. 지극히 낮은 십자가에 복종하면, 악령은 마음의 방에 들어올 수 없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성도에게 함께 임한 성령의 충만함을 깨닫는다. 그 성령이 곧 예수님의 또 다른 자아(自我)이다.
(요한복음 강해 p178 / 두란노 아카데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들려 올려져 아버지께로 귀환한다. 그 뒤,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자아(alter-ego)인 성령을 보내시는데, 예수께서는 그 성령을 통해 제자들에게 되돌아온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통해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성령을 통해 제자들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약속대로 제자들을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영인 성령을 통해서 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