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 21일, 요한복음 21장을 읽었다. 내일은 1장과 2장을, 모레는 3장과 4장을….. 30일은 20장과 21장을 다시 읽어야겠다. 내 인생은 디베랴 호수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갈릴리 호수는 광풍이 몰아치고, 디베랴 호수는 사랑이 흐른다. 내 인식에서 그렇다. 두 호수는 같은 장소다.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곳이다. 갈릴리 호수를 황제의 이름, 티베리우스를 따서 ‘디베랴 호수’라고 불렀다.
나는 요한복음 21장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주님의 음성이 얼마나 자상하고, 아름다운지요. 부활하시고, 주님은 엄청난 프로젝트를 말씀하지 않고, “밥먹자”고 하셨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양들을 먹이라”고 하셨다. 부활은 “밥먹는 것”과 밀접하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요 21:9)
예수님이 먼저 숯불에 생선과 떡을 준비하셨다. 물고기와 떡을 차려놓고 제자들에게 아침밥상을 차리신 주님이다. 떡과 물고기는 오병이어이며, 엘리야가 먹었던 그 ‘떡과 고기’와 연결된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통해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주셨는데, 까마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엘리야에게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대접한 “명령받은 까마귀들”은 그릿 시냇가의 ‘물고기와 떡’으로 했을 수도 있다. (열왕기상 17장 까마귀들은 이방인들로 해석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역사적 맥락으로 가장 합당하다.)
예수님은 떡과 고기를 제자들과 함께 먹었고, 오병이어 표적에서도 “보리떡 7개와 물고기 2마리”를 놓고 하나님께 축사하셨다. 엘리야도 “떡과 고기”를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으로 드렸다. 두 사건은 맥락이 같다.
원하는 것을 받는 것이 복이다. 이때 “원함”은 “하나님의 원함”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받는 것이 ‘축복’이다.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은 자주 ‘낭패’가 따른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것을 말씀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21:18)
원하지 않는 곳으로 주님이 데려가시면, 그곳이 축복의 길이요, 뜻이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내가 원하는 길에서 방향전환을 하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 어디로 가실까?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요21:23~24)
“요한은 재림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 초대교회에 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사도 요한도 죽었다.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이 집필했으나, 출간시점은 “요한의 죽음” 이후일 수도 있다. 23절에서 갑자기 집필자가 바뀌면서, “우리”가 “집필자”를 소개하는 문체가 들어갔다. 최소한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의 문장은 사도 요한이 쓴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과 그 공동체가 함께 집필한 ‘성령의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