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은 인생의 필수과목이며, 필수 비타민이다. 구원은 성경에서 비롯된다. 지식이 범람한 시대를 살면서, 성경말씀이 아니면 우리의 영성을 지켜낼 수가 없다. 미래사회는 정보혁명이 폭발할 것이다. 성경말씀에 대한 각종의 해석들이 쏟아질 것이다. 모든 성도는 성경해석의 ‘투구’를 써야한다.
성경을 읽을 때, 작가는 없다. 독자와 성경만 있다. 성경을 쓴 바울도, 마태도, 마가도, 누가도, 모세도, 사무엘도, 요엘도, 이사야도, 다니엘도, 요나도 없다. 작가가 없는 작품 전시회를 관람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작품으로 작가를 만나야한다. 작품이 곧 작가다. 우리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몰라도, 개략적인 뜻은 번역성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아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통역’을 두고 성경을 읽는 것과 같다. 통역은 반드시 ‘오해’의 격차가 발생한다.
대화로 이해하자!!
작가와 독자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작가는 성경말씀으로 이미 말을 했고, 독자는 그것을 읽음으로 작가의 말을 듣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작가를 통해, 성경기록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때, 우리와 작가는 시대가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신발”을 벗어야한다. 떨기나무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 모세는 호렙산을 호렙산으로 알았으니, 그 인식을 벗고, “하나님의 산”으로 나아오라는 것이다. 세속의 신발을 벗고, 주님의 신발을 신어야한다.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문화의 바다속에 살고 있다. 시대적 바다는 우리를 덮고 있어서,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우리의 모든 언어와 행위와 표현은 시대성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성경말씀을 읽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인식의 옷’을 두 벌이나 입고 있다. 하나의 옷은 내가 입고, 다른 하나는 작가에게 입힌다. 두벌의 옷을 벗는 것이 핵심이다. 내 인식의 오류를 인정하고, 성경말씀을 원문에 입각해서 작가의 의도로 인식하려고 안간힘을 써야한다.
“뭐라구요?”
우리는 잘못 알아들으면, “뭐라구요?”라고 되묻는다. 되물음은 매우 중요하다. 영어로는 “파든 미?”(pardon me?)라고 한다. 작가는 성경말씀 속에서 목청을 높여 외치지만, 나병환자의 성대결절처럼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글은 음성이 아니다. 우리가 읽음으로 글이 소리로 변환되는데, 우리의 소리로 변환되므로, 깊게 묵상하면서 작가의 뜻을 감지해야한다. 그래서 드라마 무대처럼, 성경말씀의 배경을 그리면서 읽어야한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여호수아 10:12)
이 성경구절을 놓고, “태양은 본래 멈췄다. 멈췄다면 지구가 멈춘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독자가 ‘신발’을 벗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는 여호수아의 전쟁터로 들어가야한다. 또한, 가나안 정복을 마친 이스라엘 민족과 여호수아서를 쓴 작가의 관점으로 돌아가야한다. “태양과 달”을 왜 기록했을까?
과연, 기록자가 “태양과 달이 멈췄다는 표적”을 확증하려고 썼을까? 아니다. 그 사건을 놓고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우상숭배를 받고 있던 ‘그 태양과 그 달’이 멈춘 것이다. 그러나, 아합왕 때 태양신과 달신은 백성들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바알신과 아세라신’이다. 그래서, 엘리야는 그 시대를 향해 “태양아 머무르라, 달아 너도 그리할지어다”의 심경으로 “가뭄”을 선포했다. 가뭄선포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태양과 달”에 대한 인식관을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는 태양과 달을 자연만물로 여기지만, 성경이 기록된 그 시대에는 “태양과 달”은 위대한 신(神)이었다. 우상의 상징성을 가진 그것들을 향해 “해달별의 추락”을 여호수아가 기도했던 것이다. 해달별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자연만물이다.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게 기도했다”고 성경해석을 할 수도 있지만, “달도 그리하라”고 한 것은 “시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호수아 10:12을 놓고, “태양이 멈췄다”고 해석하는 것이나, “전쟁의 승리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나, 모두 단편적인 성경읽기에 불과하다. 작가의 본뜻을 깊게 파악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성경해석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하나님과 예수님 외에 우리가 믿는 또 다른 ‘태양과 달’이 있는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외에 우리가 의지하는 또 다른 ‘태양과 달과 별’을 일컬어, 계시록은 ‘거짓의 삼위일체’(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로 비유한다. 우리는 진정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