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수) 동백꽃 필 무렵 11회에서 공효진(동백)의 활약상이 돋보였다. 이 드라마는 미혼모, 불우이웃, 싱글들의 고독을 이해하는 마을 공동체의 아름다운 감동을 전달한다. 교회가 과연 이러한 역할을 감당해야할 것이다. 향미, 그는 동백밑에서 일하지만, 평생 술집에서 일하면서 도벽(盜癖)이 병이다. 어느날, 동백을 만나서, 따뜻한 가족을 알게 됐다. 동백은 항상 향미와 함께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11회에서 향미의 남자(기둥서방)가 찾아와서 물건 다루듯 하자, 동백이 벌떡 일어나서, “손대지마”라고 한다. 향미를 겁박하고 협박한 그 남자는 “너는 죽어도, 무연고자로, 신원미상으로 처리될 것이고,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미제사건으로 덮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때다. 동백이 그 남자에게 “향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내가 신고할 것이고, 당신을 용의자로 말할 거예요. 우린 마음을 나눈 가족이예요. 가세요!!”라고 덤빈다. 그 남자는 향미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나가고, 동백은 냄비를 들고 나와서 그 남자 뒤통수를 가격한다. 아싸!!
“나 성격있어!!”
그 외마디!! 향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 현장에서 불의와 투쟁하고 저항하는 것이 곧 십자가 정신이다. 말할 때는 말해야한다. 계시록에도 보면, 우상에게 절을 하는 자는 성밖에 있다고 했다. 동백이 향미를 지키듯이, 우리는 매순간 권력의 우상과 다퉈야한다. 불의는 용납하면 안된다. 불의를 용납한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니, 회개라하고 했다. 우리가 악한 마귀에게 끌려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로 마귀의 뒤통수를 내리치셨다. 우리도 주님의 그런 성품을 본받아야한다. 칼 대신에 신념과 기도로서 악(惡)과 싸워야한다. 동백의 냄비는 곧 ‘기도와 찬양’이다.
우리가 살면서, 고독사(孤獨死)로 죽어도, 거지 나사로처럼 믿음을 끝까지 지킨다면, 아브라함의 품속에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그 영혼을 챙기신다. 그것이 진정한 장례식이다. 육체가 좋은 곳에 묻히지 못해도, 장례식에 많은 화환이 오지 못해도, 울어줄 자녀들이 없어도, 신원미상과 무연고자로 시체가 버려져도,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내가 2009년부터 존경해온 故 한경직 목사님은 영락교회를 시무하면서, 마지막 임종때 남긴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재산없이 운명하셨고, 그의 식솔들은 생계를 걱정했다. 유명한 일화다.
그는 2000년 4월19일 경기 성남 남한산성 기슭 6평의 작은 처소에서 98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나는 아무 것도 없다. 땅 한 평, 집 한 칸이 없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남기는 것은 없지만 너희들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 (故 한경직 목사의 가족 유언)
과연, 대형 교회 목사님이 그렇게 청빈하게 살면서 이 땅을 떠날 수 있는가? 한국교회가 깊게 뉘우치고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죽음, 그 이후에는 그리스도앞 심판대에 서야한다. 이 땅의 소유물은 심판대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감내했는가? 그것만이 판결받을 것이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