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 새벽별로 불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새벽기도를 하셨다. 모든 세상이 잠든 시각, 그때 주님께 나아가 말못할 사정을 말하면, 주님은 듣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청와대 국민청원과는 비교가 안된다. 국민 신문고는 결국 ‘처리 불가’로 되돌아오지만, 하나님께 올린 기도는 ‘처리 완료’로 돌아온다. 가인의 제사는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주님은 가인에게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셨다. “죄가 너를 원하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라” 그것이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이유였다. 안색이 변해서 분개하는 가인에게도 그 답을 주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성도에게랴!!
흙먼지 날리듯, 모든 생각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은 기도하지 않은 탓이다. 기도하면, 흙먼지가 가라앉고, 세상적인 흙탕물도 가라앉고, 해야할 맑은 물이 수면으로 드러난다. 인생은 그것을 목적으로 살아야한다. 많은 일을 하겠으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셨던 주님이다. 인생은 결국 2가지 갈림길에 봉착한다. 모든 인생은 2가지에서 하나를 버리고, 남은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다. 주님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택했다. 첫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의 뜻’을 택했다. 정답은 ‘0 또는 1’이다. 모든 종교도 결국 2가지로 나뉜다. 십자가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때 구름에 가리웠다. 구름의 커텐 뒤로 들어가신 것이다. 지난 토요일 삼촌의 아들이 결혼했는데, 신랑입장이 독특했다. 무대 앞에서 문이 열리면서 신랑이 출현했다. 병풍뒤에서 신랑이 나타난 것이다. 보이는 커텐뒤에 보이지 않는 신랑이 있었다. 가끔, 보이는 커텐이 열릴 때가 있다. 육신을 가진 존재는 입신을 해서 하늘의 세계를 본다. 이 땅에서 저 세상으로 갈 때는 초월자가 넘어간다. 그 초월자를 영혼이라고 부른다.
저 세상에서 커텐을 열고 이 세상에 올 수도 있다. 커텐을 연다는 의미는 ‘보이는 존재’로 나타난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존재를 발자국 소리를 듣듯 알았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면했다. 커텐을 열고 나타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류가운데 참 신랑의 얼굴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의 30년 사생애, 3년 공생애, 3일 무덤, 40일 부활승천 기간은 참신랑으로서 ‘결혼행진곡’과 같다. 구름속에 지금도 계신 창조주 예수님은 가끔 커텐을 열고 나타나신다. 이 땅에 창조주가 오실 때는 육체를 입고 오신다. 창조주의 전지전능함이다.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예수님의 실체를 직접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