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3장에서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출현이 예고된다. “내 사자”와 “언약의 사자”가 분명히 구분된다. 세례요한은 준비하는 자로서 ‘신랑의 친구’ 사명이다. 신랑의 친구는 혼인잔치를 ‘사회자로서’ 알려준다. 신부와 신랑이 결혼하기 위해서는 ‘신랑의 친구’가 반드시 있어야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고, 그 시대앞에 ‘세례운동’을 통해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다. 또한 순교를 통해서 십자가의 피흘림을 ‘사전예고’를 했다. 신랑의 친구가 미리 ‘혼인서약’을 예표한 것이다.
언약의 사자는 곧 ‘주’다.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한다고 말라기는 예언했다. 성육신이다. 성육신(成肉身)은 2가지다. 사람들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는 것만 ‘성육신’(成肉身)으로 보는데, 그렇지 않다. 부활하시고 성령으로 새로운 몸을 입으신 것도 성육신이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만 성육신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인류가운데 임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그때 성육신으로 임하셨고, 부활후에도 영원히 성령으로 임하신다. 성전이 지어졌으면, 그때 주님이 갑자기 임하신다. 이단교주들이 성전을 멋있게 지어놓고, 하나님을 기다린다면, 그때 성육신이신 예수님께서 갑자기 임하신다. 그들의 행위를 예수님은 보신다. 바벨탑을 쌓았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보셨고,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하기 위해서 땅에 직접 내려가서 확인하신 하나님이다. 하물며, 이단들이랴!! 믿는 성도들이랴!!
어떤 교회가 상속제도에 의해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대형교회를 물려줬다면, 과연 그 자격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성육신으로 주님이 그곳을 방문하신다. 주님은 성령으로 영원한 ‘성육신’의 몸을 입으셨다. 베들레헴에 태어난 그 사건을 ‘성육신’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신학적 교리에 갇힌다. 그런 신학적 교리는 이해하는 데만 도움을 줄 뿐이다. 교리에 갇힌 자는 ‘자리를 들고’ 가지 못한다. 교리를 벗어나야,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38년 된 병자가 될 수 있다. 진리는 교리의 홍해를 벗어나서 존재한다. 교리를 진리처럼 절대화하면 그것이 우상숭배다. 속지말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상속하였듯이, 대형교회도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상속한다고 누군가 주장했다면, 그것이 과연 그러한지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통해 그 교회를 방문하고, 그 당사자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판단해서 ‘축복과 심판’을 결정하신다. 이것이 진리다. 말라기 3:1~3에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다. ‘나의 사자’를 보내서 준비를 하시고, 그때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고, 언약의 사자가 임한다고 약속했다.
모든 교회의 목회자는 ‘나의 사자’에 해당한다. 곧 세례요한 사명이다. 세례요한은 ‘신랑의 친구’이며, ‘중매장이’다. 신랑이 아니다. 신랑의 친구를 ‘신랑’처럼 사랑한다면, 신랑이신 주님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얼마나 비통하게 여길 것인가? 맘몬 신을 남편삼고, 권력우상을 섬기면서 살고 있다면, 어찌 될 것인가? 성령으로 다시 회개하고, 오직 신랑되신 예수님만 바라보아야한다. 성령이 일곱 영의 눈으로, 각 사람의 심령을 감찰한다. 그것을 모르면, 안된다. 이단을 비판하는 것으로 정통교회가 의로울 수는 없다. 동성애를 비판한다고 이성애자가 의로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나 이성애자가 각각 심판한다. 죄는 경중(輕重)이 없다. 남을 비판하다가 그 비판의 그물에 자신의 영혼이 걸려든다. 성경말씀으로 영혼을 잠잠히 살필지라. 그것이 성도가 해야할 첫 번째 책무요, 사랑의 증표다.
과연, 오늘도 십자가의 방향으로 살아가는가? 나의 목자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인가?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기존의 것을 모두 버리고, 주님앞에 홀로 서야한다. 주님앞에 홀로 서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무엇도 자신을 침범할 수 없다. 언약의 사자가 그 심령에 임하는 것이 십자가의 삶이다. 자유는 곧 하나님과 1:1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1:1이다.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듯이, 모든 인생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1:1로 마주보며 사랑으로 존재한다. 그 사이에 누구도 낄 수 없다. 미세먼지조차 개입할 수 없다. 개입하면, 뭉개질 것이다. 하나님 외에 각 사람의 ‘영원한 남편’이 될 존재는 아무도 없다. 성령 남편, 성령 신부를 믿고 살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