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대학생이 된다. 오!! 소풍가는 소년처럼 봄날이다. 기쁘다. 빙그레 미소가 파문처럼 퍼진다. 누가 나를 웃게 하는가? 성령의 은혜로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30세에 세례요한을 통해 머리에 세례를 받고, 33세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을 행하시고, 십자가를 통해서 죽임을 당한 후에 다시 태어나셨다. 배움은 새로운 탄생이다.
“지금 현직 국회의장 이름이 누군지 알아요?”
어떤 협회장이 물어봤다. “누구지?” 도대체, 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 대표는 알겠는데, 국회의장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문희상 국회의장인 것을 오늘 확실히 알았다. 거기서 뭔가를 문의했는데, 내가 적임자라는 것이다. 오!! 나를 좋게 봐주는 분이 아직 있구나!! 보좌관과 통화했다.
1권의 책을 만들고, 하루를 보냈다. “중년, 대학생이 되다”는 책을 만들었다. ‘되다’에서 ‘된다’로 책 제목을 바꿨다.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최종 합격통지서를 받기 전까지는 “대학생이 된다”가 맞다. 대학생이 되면, 정식으로 새롭게 배워서, 나의 노후생활을 새롭게 설계하기로 다짐했다. 그동안 나는 현장에서 뛰었다. 발바닥이 퉁퉁 붓도록 현장의 경험지식이 내 살과 뼈가 되었다. 이론은 전혀 모른다. 책을 통해 직접 배워서 현장에서 실무로 익힌 전문지식들이다. 문예창작과에서 교육하는 것, 유튜버학과에서 교육하는 것, 국제학과에서 교육하는 영어권 문화에 대한 것 등등 듣고싶은 과목이 많다. 모든 교육을 통해 나를 새로운 ‘나’로 만들고 싶다. 이 세상은 희망의 봄꽃이다.
옛날에는 높은 곳을 꿈꿨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 어떤 업적을 내놔야하고, 어떤 명예를 얻어야하는…. 나는 낮은 곳에 있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주님은 마지막 사역에서 십자가를 통해 새롭게 탄생했다. 마지막 실습도 직접 종이 되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 군림하는 왕으로 “서로 씻어라”가 아니었다. 세숫대야에 물을 직접 떠와서, 수건을 허리에 차고서, 모든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기고 닦으면서, 베드로의 발까지 씻었다.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렸을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하셨다. 배움은 낮은 마음이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내게 어려운 결단이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배움은 ‘무지’를 벗어나는 첩경이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젊었을 때는 국회의장이 매우 높아 보였다. 지금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더 높아 보인다. 내가 모르는 높은 사람은 나와 무의미하다. 내가 쓴 글, 내가 실제로 아는 어떤 사람이 나는 좋다. 피상적으로 아는 누군가는 나와 아무 관련이 없다. 신기루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말씀이 별로 없었다. 반면, 세족식에서 베드로와는 많은 대화를 나눴고, 부활후에도 디베랴 호수에서 많은 사연을 가졌다. 부활후 아침식사로 숯불 구이를 함께 먹은 사람들은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 제자들이다. 배움은 자신의 ‘초라함, 부족함’을 알고, 주변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