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정감록’ 전설이 있다. 정도령이 와서 천년도읍을 계룡산에 건설한다는 것인데, 이와 비슷하게 유대인들에게도 ‘다윗의 전설’이 있었다. 그것이 메시야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가 출현해서, 다윗왕권을 부활할 것이라는 예언사상이다. 정도령은 정몽주와 정도전 등등 조선의 개국공신에서 비롯된 사상이다. 정감록은 백성들에게 퍼져 ‘유언비어’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예언서가 되었다. 다윗의 전설도 마찬가지다. 별놈의 메시야가 등장해서, “내가 메시야다”고 하면서, 백성들을 유혹했다. 예수님이 죽고, 3명의 대표적인 메시야가 등장했고, 엄청난 인파가 그들을 추종했다. 그들은 백성과 제사장과 유대교 지도부가 “메시야”로 인정했으나, 적그리스도였다. 이 시대도 동일하다. 백성의 숫자와 아무 상관없이, “내가 메시야다”라고 하는 자마다 “적그리스도”로 드러날 각오를 해야한다.
메시야는 본래 보통명사였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어떤 사명자를 뜻한다. 사울도 메시야였고, 다윗도 메시야였고, 고레스 황제도 메시야였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택함을 받은 자가 곧 메시야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 제사장들, 선지자들까지 메시야였다. 그런데, 고레스 황제의 칙령으로 해방을 맞고 본국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고, 새롭게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지만, 민족의 해방은 없었다. 그때 새롭게 생겨난 사상이 ‘종말의 메시야 사상’이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하는 것은 단순한 기름부음이 아니고, ‘종말의 구원주’를 의미한다. 즉, 보통명사의 메시야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백성들은 정치적 왕을 기다렸으나, 예수님은 그들의 소원을 그대로 이루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목적을 성취하셨다. 이 시대도 어떤 종교단체는 정감록 예언사상을 “메시야 사상”과 결합해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만, 결국 ‘적그리스도의 변종’에 불과하다. 훗날 그 추종자들이 ‘소련의 멸망’처럼 깨달을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메시야’는 종말의 심판주, 종말의 구원주, 성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는 메시야를 뜻하는 고유명사다.
예수님은 다윗왕조의 재건으로 메시야적 예언을 성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으로서 메시야적 능력을 이루신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백성의 죄를 용서함으로, 죄로부터 그 백성을 구출했다. 그리고, 영생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 영생이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이며, 성령을 통해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다. 예수님과 연합하면,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 예수님을 부정하고, “스스로 메시야다”라고 주장하는 자들마다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2천년 동안 무수한 적그리스도들이 등장했다. 수백만, 수천만, 수억명이 그들을 믿고 따랐지만, 구원은 이루지 못한다. 구원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기 때문이다.
주기도문도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길”이다. 하늘에서 이뤄진 그 뜻이 땅에 상속되는 것이다. 이 땅에 정치적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가 아니다. 천국을 어떻게 상속할지,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이며, 구원의 최종 목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죄로부터 죄인을 구출함으로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죄 때문에 천국을 상속할 수 없다. 구원은 예수님께서 대신 죄값을 지불하신 것이다. 태초에서 종말까지 모든 인생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지불되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서는 ‘죄인’일 뿐이다. 스스로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자는 모두 ‘죄인’이다. 반면, 예수님께서 죄를 자복하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믿고 사랑하는 자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이 세탁되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직위가 복권되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포된다. 즉, 제 2의 메시야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죄를 사하는 권능’을 주셨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자는 성령을 통해 세상의 죄를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중보기도를 통해 죄사함의 권능을 가졌다. 곧 성전기능이다. 모두 십자가의 대속기능이다. 기도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대속으로 죄값을 이미 지불했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의지해서 세상의 죄를 대신 회개할 경우, 죄가 치유된다. 그래서,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있는 거지를 향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니” 그가 걷게 되었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그의 죄값도 이미 지불되었고, 그것을 믿을 때, 죄의 속박에서 풀려난다. 평생 의인같은 죄인으로 살 것인가? 죄인을 구원하는 의인으로 살 것인가? 주님께 죄를 자백하면, 의인이 된다. 의인은 시대의 죄를 대신 회개할 수 있는 권능이 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살아났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민란이 더욱 거세졌고, 로마의 핍박이 강해졌으며, 이스라엘에 엄청난 내전이 일어났다. 그것이 AD65~70년 사이다. 요즘 대한민국처럼 별의별 메시야가 그 시대에도 나타났다. 혹세무민의 세상이었다. 누군가 출현해서, “감옥에서 풀려났으니, 이제 세계평화다”라고 선언했다면, 그것은 거짓복음이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에 세계평화를 선포하지 않았다. 믿는 자들에게 찾아갔고, 믿는 자에게만 구원이 임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세계평화를 위해서 기도할 뿐, 계시록의 예언처럼 전쟁은 불가피했다. 복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거짓복음을 진리로 혼동하고, 거짓 메시야를 ‘메시야’로 착각한다. 바알을 택할 것인가? 여호와를 택할 것인가? 엘리야 시대에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와 몇몇 따르는 자밖에 없었다. 이 시대도 과연 누가 십자가의 예수를 진심으로 따를 것인가? 그것이 영생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