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4장 말씀처럼, “내 말과 내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계시록 1:3에서도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계시록 1:17에서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고 하셨다. 주님은 살아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자들에게 “지금, 오늘” 주님은 말씀하신다.
“계시가 긑났다.” 또는 “계시는 한 명에게만 주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이론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주님이 이 땅에 나타나셨고, 마태와 마가와 누가와 요한은 각각 그 예수님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다. 사도바울의 서신도 동일하다. 예수님은 2천년동안 살아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시며,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다. 그 음성을 지금, 오늘, 듣는 자가 복있다.
주님은 말씀으로 말씀하신다. 잠언 4:20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주의하며, 성경말씀을 묵상할 때 들려오는 성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렇다. 가는 귀가 먹으면 안된다. 성령은 마음의 바지 가랑이를 강하게 잡아 당기고, 고막의 옷자락을 스친다. 옷소매를 끌고 어딘가로 데려가거나, 그곳에서 끌고 나오신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유대광야로 내몰았고, 때가 되니 그곳을 벗어나게 하셨다. 성령께서 젊은 부부 마리아와 요셉을 이끌고 이집트로 가셨다가, 때가 되니 그곳에서 갈릴리로 돌아왔다.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살면, 마음속에서 성령이 함께 살고 계심을 알게 된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성령님은 항상 이방인처럼 우두커니 구석에 계신다. 성령께 말을 걸면, 성령님은 그때 말씀하신다. 외국인과 비슷하다.
“하이 HI”
먼저, 성령님께 인사하자. 성령님은 마음속에 이미 와 계시고, 감동의 인기척을 내신다. 알아주길 원하는, 성령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복있다. 때론, 세상뉴스를 보게 하시면서, 성령님은 자신의 존재를 말할 때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릴 때, 자명종으로 세움을 받은 자가 ‘바로왕’이었다. 성령께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하게 역사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나게 하려고 완악하고, 고집스런 ‘반석’이 되게 한 것이다. 악한 자는 악한 날에 ‘악한 반석’으로 사용된다. 모두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악한 반석이 ‘악한 반석’인 것을 아는 자가 복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