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가지신 분들과 점심을 나눴다. 세상속에 살면서, 믿음의 언어는 자주 무시당한다. 반면, 오늘 모임에서는 내가 마음에 담아뒀던 속생각들과 일치된 말들이 많았다. 비판과 비난이 정의롭게 보여지는 시대에, 따뜻하게 감싸고 보듬는 것이 성경적 진리임을 다시 확인해본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꿈을 잃지 않고,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간구한다”는 말에, 65세에 성공한 KFC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때에 맞게 그 꿈을 실행하신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은 해에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보좌가 보여졌다. 그때, 자신의 입술이 지은 범죄를 자백하고, “망했다. 죽게됐다”고 떨었다. 언론인으로서 나는 ‘직업의 방패’를 삼아서, 입술과 생각의 범죄를 슬슬 피해서 숨었다. 최근에야, 하나님께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사람을 비난함으로 내가 의인인체 높어졌던지, 미움과 증오로 사람들을 마음으로 죽였는지, 깊게 참회했다. 성경을 읽을수록 내 과거가 생각나니, 나는 성경의 날카로운 칼로 내 생각을 가르고, 참회의 길을 걷는다. 오늘은 믿음을 가지신 분들의 삶을 보면서, 언론인으로 사시는 분이 젊었을 때, 직장에서 성경책을 펴놓고 일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성경이 길이구나”는 더욱 깨닫는다. 또한, “벤을 잃었을 때, 마음이 무너졌다”고 고백하신 곽영일 박사님의 솔직한 고백을 들으면서,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주시니, 구원이 내게도 오는구나”를 느낀다. 또한, 엠마오로 낙향하는 두 제자에게 주님이 나타나셨다. 그 주님께서 이 시대는 잠잠하실까? 나그네처럼, 이방인처럼, 대화에 참견하시며,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실까? 주님은 오늘의 대화에서 어느 자리에, 어느 대사에서, 어느 틈에 끼어들어서 말씀했을까? 집에 돌아와, 그때를 돌아본다. “벤은 아들의 뜻입니다”는 그 대목일까? 아들이신 주님이니, 그럴까? 아니면, 또 무엇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성경이 진리임을 믿어본다. 오늘밤, 주님이 내게 오시려나? 오늘의 만남은 겨자씨처럼 사소한 믿음에서 비롯됐다. 곽영일 교수님을 통해 맺어진 인연들이다. ‘나눔’은 곧 ‘사랑’이다. 오늘 뵌 분들의 삶속에 성령의 은혜가 항상 충만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