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요한복음 8장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유명한 성경구절이 나온다. “진리를 알지니”로 시작한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인생을 자유롭게 한다. 진리는 무엇인가? *요한복음 8장:31~59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의견은 극적으로 대립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었다. 성경을 잘 가르치는 교사로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마귀의 자식들”로 비판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므로, 죄를 범했으면서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의롭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주님은 “죄의 종”이라고 심판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처럼 살지 않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을 행하셨다. 여기서 그 차이가 발생한다. 유대인들도 성경속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고(요8:41) 예수님도 성경속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를까?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부르는 그 아버지는 ‘마귀’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귀의 아들들이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되고, 마귀를 왕으로 섬기게 된다. 마귀의 족속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에 거할 수도 있다. 마귀들도 에덴동산에 있었다. 마귀들은 믿는 자들을 괴롭게 하려고, 그 믿음을 훼손하려고 성전속에 뱀처럼 숨어있다. 성경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믿었으나, 이방민족들이 그들속에 있으면서 유일신 신앙을 흔들었다. 아브라함조차 후손의 약속을 받았으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와같이 인간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마귀의 유혹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간음하는 여인의 죄만 보면서, 심판의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의로운 자 누구인가?
요한복음 8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버지와 아들”은 단순한 혈연적 관계를 넘어선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제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정의될 수 없다. 유대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서 “마귀에 속한 자들”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의 행위가 출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법이다. 십자가를 첨탑위에 세우고, 단상뒤에 십자가를 걸고 설교하는 교회도 동일하다. 그 말씀을 행하는 자마다 구원을 얻으리라.
인생은 항상 듣고,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간다. 나도 하루에 읽는 책들이 10권이 넘는다. 신문까지 탐독하면 12권이다. 물론, 하루에 10권 모두 읽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탐독하면서 내 두뇌를 자극시킨다. 요즘은 부동산과 관련한 서적들을 주로 읽고 있는데, 그러한 지식의 근원이 어디로부터일까? 나는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자신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안에서 의롭다고 믿었다.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을지라도, 하나님안에서 자신들의 행위가 어떠한지 살펴야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어떠한가? 그와같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예수님안에서 자신의 행위를 점검할 때가 되었다. 현행범으로 붙잡힌 음녀는 구원을 받았고, 음녀를 붙잡은 유대인들을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 왜 그러한가? 주님 앞에 죄를 자복하는 자마다 그 죄가 용서를 받는다. 주님 앞에서 의로움을 자랑한다면, 주님의 십자가 피흘림이 그 사람에게 무슨 소용인가?
그러므로, 스스로 마음을 낮은 곳에 두고, 겸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