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 여로보암 18년에 아비얌이 남유다 왕이 됐다. 3년간 통치했다. 그의 어머니는 마아가요, 압살롬의 딸이다. 아비얌은 아버지 르호보암처럼 악을 행했다. 그의 마음은 증조부 다윗과 같지 않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비얌은 신실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을 주셨으니,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시로 보존하기 위함이다. 다윗은 밧세바 불륜과 우리아 살인을 제외하면 평생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평생 전쟁이 끊이질 않았고,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지속됐다. 아비얌의 업적은 유다 왕조실록에 기록됐다. 아비얌이 죽고, 다윗성에 있는 국립묘지 곧 왕릉에 묻혔다. 그의 아들 아사가 왕위를 계승했다. (1-8)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4년에 아사가 남유다 왕이 됐다. 41년간 통치했다. 그의 할머니는 마아가로 압살롬의 딸이다. 아사가 고조부 다윗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동성애 금지법을 제정해 전국에서 동성애자를 추방했다. 조상들이 섬긴 모든 우상을 제거했다. 아사는 가족과 왕족까지 예외를 두지 않았다. 대비 마아가가 음란한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무당을 불러서 굿판을 벌이자, 내명부를 맡은 대비의 직위를 폐했다. 우상을 찍어 토막내서 겟세마네 동산 근처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태웠다. 아사는 깊은 산골에 숨겨진 산당은 없애지 못했다. 평생 하나님을 사모하는 아사의 마음이 한결같았다. 그의 아버지와 자신이 성별한 보물을 하나님의 성전에 바쳤다. (9-15)
아사와 북이스라엘 바아사 사이에 평생 전쟁이 있었다. 바아사가 유다를 침략해 라마를 점령했다. 수도 예루살렘 턱밑까지 들어온 바아사는 라마성을 요새화했다. 상황이 급박해진 아사는 아버지 아비얌이 군사동맹을 맺은 아람왕 벳하닷에게 사신단을 파견했다. 성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금은보화를 예물로 보내면서, “내 아버지와 그대의 아버지는 군사동맹을 맺었으니, 이제 우리도 군사동맹을 맺기를 원합니다. 먼저 작은 성의를 표현하니 바아사와 동맹을 깨뜨리고, 북이스라엘 북쪽 경계를 속히 침략해 주소서” (16-19)
벤하닷이 군사동맹을 허락하고, 즉시 군대를 파견해 북이스라엘 북쪽 지역을 침공했다. 바아사는 전쟁뉴스를 듣고서 라마성 건축을 중단하고, 세겜 근처 디르사로 철수했다. 이에 아사는 유다 전국에 주민 동원령을 선포하고, 라마에 집결하게 했다. 돌과 재목을 베냐민땅 게바와 미스바로 옮겨서 국경선을 방비했다. 아사의 업적과 건축사업은 유다 왕조실록에 기록됐다. 그는 늘그막에 발병이 나서 다리를 절었다. 아사는 조상들과 함께 자니, 다윗성에 있는 국립묘지 곧 왕릉에 묻혔다.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위를 계승했다. (20-23)
남유다 아사왕 2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북이스라엘 왕이 됐다. 그는 2년간 통치했고, 전쟁중에 암살당했다. 나답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눈에 거슬리게 행했고, 아버지처럼 악했다. 왕이 죄를 짓자, 모든 백성들도 죄에 빠졌다. 잇사갈 출신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켰다. 나답이 블레셋을 침공해 깁브돈에서 전쟁할 때, 바아사가 나답을 암살했다. (24-27)
남유다 아사왕 3년에 바아사가 나답을 암살하고 북이스라엘 왕이 됐다. 바아사는 북이스라엘을 24년간 다스렸다. 왕이 된 즉시 그는 여로보암의 가족과 가문에 속한 사람들을 모조리 몰살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 아히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성취됐다.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이스라엘 전체를 죄의 길로 인도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한 형벌의 댓가였다. 나답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됐다. 아사와 이스라엘 바아사 사이에 전쟁이 계속됐다. 바아사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 그가 이스라엘 전체를 죄의 길로 인도했다. (2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