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 예후 7년에 요아스가 남유다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했다. 그의 어머니는 브엘세바 출신 시비아였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 행했고, 그의 중매로 두 아내와 결혼하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정치를 했다. 다만 산당들을 없애지 못했다. 백성들이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분향했다. (1-3)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성전을 위한 모든 헌금들, 성전세와 감사헌금과 특별헌금을 재정 담당자들에게 제사장들이 직접 받아서 성전이 파손된 곳이 보이거든 수시로 보수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요아스왕 23년이 되도록 제사장들이 성전보수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갈수록 성전 노후도가 심각해졌다. 악한 아달랴의 아들들이 성전헌금을 빼돌려 바알 신당에 바쳤기 때문이다. (4-6)
어느날 요아스가 작심하고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성전 앞에 불러놓고 말했다. “저기를 보시오. 누더기처럼 곳곳이 파손됐는데, 여러분 눈에는 전혀 보이질 않소? 하나님 보시기에 민망해서 얼굴을 못 들겠소. 성전건축헌금을 받아놓고 도대체 뭘 했소. 그동안 일은 덮을테니, 성전수리 업무는 앞으로 제사장들이 하지 말고, 전문가들에게 맡기시오. 왕실에서 직접 임명하겠소” (7)
제사장들이 왕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에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큰 헌금통을 만들어서 뚜껑에 구멍을 뚫고 성전 정문 오른쪽 곧 번제단 옆에 놓았다. 성전에 가져오는 모든 헌금은 그 헌금통에 넣도록 제도가 정비됐다. 헌금통에 헌금이 웬만큼 모이면, 왕의 비서와 대제사장이 함께 헌금통을 열고 액수를 계산했다. 성전헌금은 성전관리 감독들에게 넘겨졌다. 감독들은 목수와 건축자와 석공과 일꾼들에게 각각 경비를 지불했다. 감독들이 성전을 수리하는데 필요한 목재와 돌도 직접 구입했다. 성전헌금은 은대접과 가위와 주전자와 나팔 등 성전기물 구입비용으로 지출되지 않았다. 성전관리 감독들은 정직하게 일했으므로 회계 보고를 할 필요조차 없었다. 속건제와 속죄제를 위해 바친 헌금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렸다. (8-16)
그때에 아람왕 하사엘이 가드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예루살렘을 향해 아람군대가 올라오자, 요아스는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와 자신이 구별해서 드린 모든 성물들과 왕궁 보물창고에 있는 금은보화와 성전에 보관된 금을 모두 모아서 아람왕 하사엘에게 예물로 보냈다. 하사엘은 매우 흡족히 여기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않았다. 요아스의 업적은 유다 왕조실록에 기록됐다. (17-19)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 요아스는 신앙심이 약해지면서 우상숭배의 길에 빠졌다. 요아스의 두 신하, 요사갈과 여호사바드가 왕을 배신하고, 밀로 궁에서 왕을 암살했다. 요아스가 죽으니 다윗성에 있는 국립묘지에 묻혔다.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위를 계승했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