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둘로 쪼개졌고, 그때부터 예언자가 등장했다. 사무엘 시대부터 예언자들이 있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무엘은 그의 스승 엘리에게 배웠고, 이후 선지자들의 학교가 성경에 등장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도원이며, 신학교다. 영적 현상을 중요하게 가르쳤다면 기도원 스타일이고, 성경을 지식적으로 가르쳤다면 신학교 스타일이다. 어떤 스타일이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천직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곧 예언자요, 선지자들이다.
예언자의 근원은 창세기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다. 뱀의 유혹으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자, 하나님께서 직접 “여자의 씨가 태어나 뱀의 머리통을 깨뜨릴 것이다”고 예언하셨다.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다. 모세도 10대 재앙을 선포하면서, 이집트 왕국에 핵폭탄을 터뜨렸다. 모세가 선포하면, 이집트에 재앙이 일어났고, 여론이 흔들렸다. 이러한 예언은 매우 짧은 시기에 일어나서, 백성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엘리야도 마찬가지다. 아합왕은 북이스라엘의 전성기다. 부국강병을 위해 솔로몬의 정책을 이어받아 외교정책을 펼쳤던 아합왕인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왕의 정책’을 심하게 비판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예언서의 책이 없고, 사건만 전해진다. 죽은 자를 살린 두 선지자는 이후 ‘선지자 학교’를 설립했다. 엘리야가 교장을 맡았던 그 학교가 엘리사에 의해 확장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북이스라엘과 남왕국을 새롭게 변화시켰을까? 만약, 해냈다면, 바알신앙이 없어졌을 것인데, 아모스와 이사야와 호세아와 미가 선지자와 예레미야 등등 선지자들의 고발장에 따르면, 왕국의 타락은 더욱 거세졌다.
초기 예언자들과 후기 예언자들은 차이가 있다. 초기 예언자들은 ‘책’이 없고, 말로 선포하면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대표적이다. 후기 예언자들은 사건보다는 ‘설교집’이 전해진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가 대표적이다. 매우 긴 설교집이 모아서 전해졌다. 성명서라고 할 수도 있고, 기자회견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은 ‘하나님께서 행할 일’이다. 예언자들의 예언은 ‘미래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행할 일”을 미리 선포한 것이다.
비유를 하면, 예언자는 대변인 역할이다. 청와대에서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식당은 오후 9시까지만 영업해야한다”라고 발표하면, 행정기관 공무원은 현장을 점검하면서 법을 어긴 식당을 찾아서 벌금을 부과한다. 대변인의 말에는 공권력의 효력이 있다. 왜냐면, 대통령의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통령의 말을 신뢰하는 이유는 ‘법의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선포하고, 그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행하심으로, 그 예언자는 훗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주전 8C와 7C에 엄청난 예언자들이 나왔다. 문서로 전해진 책 외에도 실제로 활동했던 예언자들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종교혁명 시대에도 루터와 칼빈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역사는 두 인물을 기억할 뿐, 하나님께서 혁명을 일으켰을 때는 일꾼들이 엄청나게 많다. 주전 8C와 7C에 왜 문서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을까?
최초 문서 예언자는 아모스다. 아모스서7:10에 보면, “나는 선지자가 아니다”는 말이 나온다. 그 시대는 여로보암 2세인데, 북왕국의 부국강병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다. 조선시대로 보자면, 영조와 정조 시대처럼 마지막 국가부흥을 맞이하여 백성들의 민생이 상당히 좋아졌다. 당시 성소는 벧엘에 있었다. 벧엘 대제사장은 아마샤였는데, 아모스의 예언을 듣고서, ‘반역죄’로 모함했다. 아마샤는 왕실 측근 선지자이고, 아모스는 뽕나무를 재배하던 농부였다. 쉽게 말하면, 아마샤는 총신대를 나온 유명한 목사이고, 아모스는 신학교 출신이 아닌 평신도였다. 평신도인 아모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아마샤 입장에서는 “니가 뭔데”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가인이 아벨에게 “니가 뭔데”라고 하면서 돌로 때려 죽인 것과 같다.
사무엘이 죽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죽고, 선지자 학교는 분명히 존재했을 것인데, 1C가 지나고 나서 과연 어떻게 됐을까? 선지자 학교를 나온 신학생들은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면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한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그래서 요단강 근처에서 살았다. 왕실이 있는 중심부에 살지 않고, 변방의 주변부에 살면서 중심부의 권력을 움직였다. 엘리사의 경우, 왕의 교체를 위해 실제로 기름을 붓고, 구데타를 뒤에서 조정했지만, 왕실을 출입하지는 않았다. 왕을 향해 직언을 거침없이 발언한 것이 ‘예언자의 소명’이다. 조선시대 사관과 같고, 지금은 ‘기자’와 같은데, 기자들이 거의 기레기라고 욕을 먹고 있으니, ‘무늬만 있는 기자들’은 거짓 선지자에 속할 것이다. 진실된 선지자는 “미래”를 맞추는 것이 아니고, 권력과 결탁하지 않는 사람이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왕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왕조에 대한 개혁을 추구했다. 국가 시스템이 그대로 존속되면서, ‘리모델링’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모스 때부터 ‘국가멸망’이 예언됐다. 이것이 달라진 것이다. 왕의 교체가 아니라, 국가멸망으로 ‘죄악’이 증폭됐다. BC8C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새롭게 달라진 것이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BC721에 멸망했고, 남왕국도 BC587에 멸망했다. 이사야가 남왕국의 멸망을 예언했는데, 그의 예언은 당장에 성취되지 않았다. 예언자의 예언은 성취될 때 공인된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150년 넘게 거짓 선지자의 오명을 써야했다. 국가는 멸망당하지 않았으므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국가멸망앞에 ‘선배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어받아서, 지속적으로 예언자들이 출현했다. 예언의 상속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도 이사야의 예언을 이어받아서 국가멸망을 예언한 것이다. 왕의 입장에서 예언자들은 “간첩”처럼 보였고, “역적”이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문서로 예언서가 집필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왕의 교체는 보다 빠르게 이뤄졌지만, 국가의 멸망은 100년이 넘게 지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후배들을 통해서 스승의 설교집이 보존됐고, 그 예언이 이뤄졌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그 예언서가 널리 유통되면서 읽혔다. 예언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정부 입장에서는 ‘불편한 금서’와 같았다. 문서 예언자들의 공통점은 “국가멸망”과 “새로운 세상”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에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분명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 땅에 세워졌는데, 예언자들에 의해 공증된 그 ‘이상세계’와 얼마나 닮았는지, 그 형상과 모양이 하나님의 나라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면밀하게 따지면서 살아야할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은 주전10C에 살았고, 이후 400년이 지나고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성전멸망도 그때 이뤄졌다. 솔로몬 성전은 건축기술로서 완벽해서 천년 이상 지나도 무너지지 않았을 것인데, 국가가 멸망하면서 함께 사라졌다. 국가에 대한 멸망이 왜 주전8C부터 예언된 것일까? 공동체의 균열이 이때부터 진행된 것인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공동체 멸망’을 말씀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나님께서 갑자기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말씀했다. 선악과를 따먹을 상황이 발생하니까, 경고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경고하셨다. 그럴 상황이 발생해서 말씀하셨다. 국가 공동체의 멸망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멸망의 전조현상’이 나타나니, 미리 선포하셨다. 삼풍 백화점이 붕괴되기 전에도 전조현상이 있었다. 균열이 일어났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무너진 것이다.
성전까지 건축한 솔로몬 시대에 ‘바알신앙’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 바알신앙이 점점 성장하면서 민간신앙의 중심부를 차지했다. 하나님을 믿는 야훼신앙이 쇠퇴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문화적 기념일’이 되고, ‘관습과 형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식시장에 보면 ‘물타기’가 있는데,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바알신앙’으로 물타기가 된 것이다. 놀랍게도 백성과 왕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이사야 1장에 나오듯이, 하나님을 위한 절기를 철통같이 지킨 것이 남왕국 왕과 귀족들이다. 그들이 비판받은 것은 하나님을 위한 제사가 아니고, 사회적 약자를 내버린 국가 시스템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십일조도 하고, 안식일도 지키고, 모든 절기를 철저히 지키는데, 예언자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금송아지 우상숭배’로 보였던 것이다. 예언자들의 비난은 거칠었고, 저돌적이었고, 날카로웠다. 그래서 문서 예언자들은 대부분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쓴소리를 하는데 좋아할 권력은 없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지나고, 남왕국과 북이스라엘은 각각 국가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국방력이 강해지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더라도 국가는 운영될 수 있었다. 이때가 주전8C다. 사람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살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신앙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교회 건물이 없고, 사는 것이 힘들 때는 성도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지만, 성전건축이 시작되고 성도 숫자가 많아질수록 교회 공동체는 ‘세상단체’처럼 삭막해진다. 주전8C가 그러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강해졌고, 왕들은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신명기에는 분명히 “율법의 복사본”을 왕이 날마다 읽으면서 국가를 통치하도록 했는데, 아합왕은 율법서를 읽기는커녕 아내 말을 듣고서 국가를 다스렸다. 아담이 하와 말을 듣고서 에덴동산을 다스린 것과 흡사하다. 율법서를 읽지 않고 국가를 통치해도, 오히려 잘 운영되면서 ‘신앙 공동체’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국가의 자율성 획득이 주전8C 현상이다. 미국에 교회들이 어떠하고,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돈이 쌓이는 것은 귀에 귓밥이 쌓이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된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니, 문밖에 나사로가 있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보고도 못 본 척 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병들고 헐벗은 자는 바로 ‘부자’다. 그 부자는 결국 지옥에 갔다. 부자는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지옥갈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왜냐면, 돈은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긍휼의 눈’을 멀게 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돈이 쌓일수록 이웃들과 함께 나눈다. 그것이 돈을 다스리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