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으로 확인된 최초 수도사는 안토니우스다. 그는 251년에 출생해 356년에 사망했다. 갑부의 아들로 태어난 안토니우스는 부모님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다. 34세에 마태복음 19장의 부자청년 말씀을 읽다가 크게 감명을 받고, 모든 재산을 처분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줬다. 여동생에게도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재산만 줬다. 마태복음 부자청년은 예수님 말씀을 거부하고 떠났으나, 그 말씀이 안토니우스에게 100% 떨어졌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아파트 수백채에 해당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안토니우스가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산속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니,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는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하면서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수도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그는 기독교가 학문화되는 것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성경 전체를 암송할 정도가 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를 확정한 인물인데, 그가 존경한 인물이 안토니우스다. 아타나시우스가 안토니우스에 관한 전기를 썼고, 그 책이 수도원 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책에 따르면, 안토니우스는 2~5일을 금식하고, 하루에 보통 1끼를 먹고, 포도주와 고기는 일체 먹지 않았다. 그의 생활습관은 훗날 수도사들의 표본이 되었다. 그는 죽기까지 시력과 치아가 매우 좋았고, 얼굴에는 웃음이 함박꽃처럼 가득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님의 향기가 가득했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신학적으로 혼동이 있는 자리에 그가 갑자기 나타나서 한마디만 하면 모든 논쟁은 종결됐다. 예수님이 바다를 향해 꾸짖으면 바다가 잔잔해지듯, 그가 말하면 모든 혼동이 잔잔해졌다. 그는 사막에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면서 실제 영적 전쟁을 하면서 살았다.
안토니우스 전기를 읽은 시므온은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했으나, 스스로 고행을 너무 심하게 하면서 추방당했다. 그는 홀로 고난의 길을 걸어갔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기 위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음욕과 식욕과 수면욕을 억제하는 금욕생활을 했고, 쇠사슬을 온 몸에 감고서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돌을 세워서 그 위에서 사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했다. 돌탑의 크기가 3m에서 18m까지 점점 높아졌고, 가장 마지막 돌탑 위에서 36년을 산 것으로 전해진다. 식사는 그의 제자들이 밑에서 올려줬고, 엄청난 인파가 돌탑 옥탑방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를 보려고 몰려온 사람들에게 돌탑에서 설교했고, 이교도들이 개종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왕들은 그에게 자문을 받기 위해 돌탑으로 기꺼이 찾아왔다. 그는 40일 금식기도를 26회했고, 그가 세수를 한 물을 밑으로 뿌릴 때, 그 물방울을 세례라고 여기면서 맞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고행을 ‘주상고행(柱上苦行)’이라고 한다. 시므온의 돌탑은 지금도 남아있어 순례자의 유적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