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혈병에 걸렸어요. 덕분에 복음을 만날 수 있었죠. 제게는 병이 행운이고, 은혜입니다. 병과 함께 찾아온 주님을 만나, 지금도 예수님을 간절히 붙들면서 살아갑니다.” – 춘천 한마음 교회 어떤 자매님
춘천 한마음 교회 예배를 마치고, 함께 복음의 교제를 나눈 어떤 자매님이 내게 말한 것이다. 똑같은 현상을 놓고,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느냐가 확연히 달랐다. 그녀는 ‘백혈병’을 ‘은혜’라고 정의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은 제물 사이로 직접 걸어서 들어가셨다. 죽기까지 그 언약을 지키겠다는 약속의 증거로서, 모든 죽는 것들을 뚫고 걸어오시는 하나님의 걸음이 보였다.
또 다른 자매님은 현재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분인데, 함께 나란히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그 친근함으로 우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하고, 예배했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주향 자매님 덕분이다. 미국 선교활동이 어떤 내용인지 무척 궁금했는데, 그녀는 생동감 넘치는 복음 스토리를 꺼내놨다. 3~4시간 가량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그녀의 남편은 미국인인데, 현재 미국에서 ‘기독교 전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복음을 학생들에게 직접 전하고 있다.
나는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눈망울이 사슴처럼 곱고, 미소가 장미꽃처럼 붉은 그녀가 나를 보면서, “제가, 군대귀신에 들렸었어요. 젊었을 때, 군대귀신에 제게 들어왔어요. 끔찍했죠.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너무 무서웠어요”라고 말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결코 유머가 아니었다. 거라사인 공동묘지에 있던 노숙자 2명에게 군대귀신이 들렸다. 예수님은 둘을 모두 치료하고, 한명에게는 “너에게 일어난 일을 집에 돌아가 전파하라”고 했다. 예수님이 파견한 최초 선교사다.
그녀는 가난한 남편을 만나 지금도 가난하게 살아간다. 그녀는 젊은 날, 매우 부유했다. 사업가로 성공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해외 유학파 학생이었고, 매우 풍족한 삶을 살았으나, 어느날 사업이 망하면서, 알바를 해야할 운명에 처했다. 나는 본래부터 가난해서, 가난이 익숙한 사람이지만, 그녀는 부유했다가 가난하게 된 사람이라, 상대적 박탈감으로 겪었을 고통이 상당했을 것이다. 과거 사건을 담백하게 털어놓았지만, 살아낸 삶의 무게는 묵직하게 다가왔다.
내가 물었다. “옛날엔 지금과 많이 달랐네요? 담배도 피우셨나요? 술은요?” 고운 입술로 그녀가 말했다. “담배도 했죠. 술도 아주 비싼 것으로 마셨죠”
그녀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고도 마음의 방황은 멈추지 않았다. 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그 공허함은 결혼생활을 고단하게 만들었다. 어느날 춘천 한마음 교회에 다니는 분을 알게 됐고, 그녀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속에 있던 모든 내용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을 ‘일꾼 언니’라고 불렀다.
“저는 남편과 자주 싸웠어요.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슬펐어요. 그때마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했는데, 일꾼 언니에게 걸핏하면 전화를 걸어서, 내 마음을 털어놓았어요. 그렇게 통화를 하면 마음이 시원했어요. 마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것 같았어요. 일꾼 언니가 쓰레기통처럼 제 마음을 받아줬어요. 지저분하고, 더러운 제 마음이 그렇게 깨끗해지기 시작했어요”
나는 솔직히 그녀의 과거 모습이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의 모습이 너무 곱고, 평온한 탓에,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남편과 다투면서 살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같은 교회 식구들은 그녀의 현재 모습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고 했다.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 불가능의 1순위로 꼽힌 그녀가 복음을 들으면서 인격이 변화되기 시작했고, 그녀는 과연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다. 남편은 그런 모습에 매우 놀랬고, 결국 한마음 교회에 와서 서서히 복음을 영접한 것이다.
“가난의 옷을 입게 해주신 하나님께 지금도 감사를 드려요. 18개월 동안 미국에서 선데이 스쿨을 하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다가가게 하시려고, 저를 가난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됐어요. 실제로 가난해야, 가난한 자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녀와 남편은 18개월 전에 미국으로 갔다. 남편이 살던 고향으로 가지 않고, 복음의 현장으로 직장을 구했고, 그곳에서 남편은 학교 교사로, 그녀는 집안 살림을 맡았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빚이 없어서, 시간은 자유로웠다. 어느날 집밖 놀이터에 갔더니, 아이들이 방목하듯 놀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시간과 경제가 함께 들어가야 해서, 머뭇거린 것이다.
그때다. 무슬림의 신흥종파가 동네 아이들을 찾아와, 함께 놀아주고, 먹을 것도 나눠주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일을 착수했다. 집의 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을 집에 초대한 것이다. 이것이 썬데이 스쿨이다. 나는 그녀의 간증에서 ‘에린 브로코비치’를 봤다. 기꺼이 사람들의 삶속으로 걸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에린 브로코비치’처럼 그녀는 오직 생명을 살리고자 자신의 모든 삶을 포기하면서 ‘돌보미 천사’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녀와 남편의 썬데이 스쿨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10년후, 썬데이 스쿨로 양육받은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을지, 벌써 희망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