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작가]=소양강 근처에 솔마랭 까페촌이 있다.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까페들이 10개 정도 몰려 밀집한 곳인데, 꽤 괜잖은 곳이다. 춘천 한마음 교회 작은 교회 식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복음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대화에는 정치 사건이나 주식과 코인 이야기는 결코 낄 수 없다. 부동산 ‘부’자도 들어오지 못한다. 3시간이 그냥 훌쩍 흘러가는데, 모두 모닥불 앞에서 군고구마를 굽듯, 이야기에 흠뻑 취한다. 춘천 한마음 교회에 오게 된 배경에 대해 간증을 나누는데, 그게 말씀이 육신이 된 복음 자체다.
변압기가 ‘펑’ 소리를 내고 터졌다. 춘천 한마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한참 기도를 하는데, 정전이 됐다. 누군가 와서, 변압기 사고를 목격하고, 이야기를 해줬다. 기도음악 소리가 끊겼다. 이 정도 사건이면 교회가 술렁거릴 것인데, 성도들은 앉은 자리에서 요동함이 없다. 전기는 그저 환경의 일부에 불과했다. 눈앞이 어두우니,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는 데 더 좋은 환경일 뿐이다. 찬양대를 이끄는 분이 나오더니,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목청을 높였다. 찬송가는 그렇게 교회에 울려 퍼졌다. 과학기술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과연 초대교회에 마이크 시설이 있었겠는가. 전기가 없는 상태, 오늘의 카타콤이다. 경제가 열악한 그 상태, 지금의 카타콤이다. 일시적 카타콤에 빠졌을 때,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모두 눈을 감고, 하나님을 향해 간절함을 드렸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전기가 기적처럼 고쳐지길” 바란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적은 없었다. 목사님은 매우 심플했다. 평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했다.
“변압기가 터졌어요. 예배는 각자 집에서 인터넷으로 보도록 해요. 녹화된 영상 말씀을 지금 올려드릴께요. 전기가 언제 고쳐질지 장담할 수 없으니, 무작정 기다릴 수 없으니까, 오늘 예배는 집으로 가서 드리도록 할께요”
모두 양처럼 순수하게 일어나 교회를 나갔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과거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의 근성이 있다면, 각종 반대 의견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인데… 누구 탓이냐고 책임론 여론을 주장할 법도 한데…. 한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르면서 문제를 대처해 나갔다. 나는 이 작은 사건을 눈앞에서 보고 매우 놀랬다. 지난 해 12월 25일에도 정전사태가 일어났는데, 그때도 동일한 반응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평으로 최근에 이사를 한 분이 이웃을 예배에 데려왔는데, 식당에 앉아 고향에 온 가족처럼 예배를 준비했다. 그때 목사님은 직접 우리를 찾아와 자세를 낮추며, “갑작스런 사건이 생겨 예배에 불편을 드렸다”면서 마음을 전했다. 이런 모든 사건을 보면서, 과연 인격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교회가 건물이었다면 정전 사태로 성도들은 당혹했을 것이다. 성도들은 교회 건물을 벗어나, 마음에 불을 켜고, 예배 말씀에 집중했다. 작은 교회는 복음으로 뭉쳐진 진실한 공동체다.
나는 솔직히 춘천 한마음 교회 예배에 참석하려고, 마음의 전쟁을 해야한다. 호강하니, 요강에 똥을 싼다는 속담이 있다. 딱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주일날 새벽 4시, 이불속에서 잠과 펼치는 전쟁은 줄다리기처럼 끈질기다. 그냥 벌떡 일어나면 될 것인데, 혼자서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이불을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1시간, 1시간이 흐르다가 시간을 놓칠 때도 있는데, 오늘은 오전 7시에 마음을 세우고 출발했다. 와서 보니, 변압기 사고에 요동함이 없는 춘천 한마음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 영웅을 보는 듯 하여 나는 몹시 작아졌다. 김성로 목사님의 설교는 내 마음의 어둠에 빛을 줬다. 어쩌면 나는 영혼이 정전된 상태로 살았던 것일까? 설교를 기록한 마지막 장에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순교자들은 죽음을 통해 예수의 부활을 선포한 증인들이다. 또한 그들은 잠깐의 고통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님을 확증한 자들이다. 누구든지 이러한 마음을 갖고 산다면, 순교자의 후예다”
내 차가 청결했다면, 작은 교회 식구들을 태워 함께 갔을 것인데, 내 차는 너무 지저분했다. 어쩌면 요즘 내 마음 상태가 그러한 것인가? 예배 후, 우리는 마적산 손만두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교인 숫자 2500명이 넘는 교회인데, 성도들은 거의 대부분 서로를 알아본다. 그 이유는 간증문 덕분이다. 간증 영상을 촬영한 것이 800개 이상 공개됐고, 오직 주만이 채널을 통해 누구든지 볼 수 있다.
2500명 성도들은 간증문 작성 훈련을 하는데, 김성로 목사님은 모든 간증문을 읽고 있다. 2500p는 책 20권 분량이다. 일주일에 20권을 읽다니!! 성도들이 살고 있는 삶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으니, 양이 그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는 그 양의 애로사항을 아는 관계로서, 춘천 한마음 교회는 모두 한 식구다. 또한 작은 교회는 일꾼이 정말 중요한데, 일꾼은 감투가 아니다. 만약 감투만 쓰는 일꾼이 있다면, 즉시 감투를 내려놓게 한다. 그것이 일하지 않는 일꾼을 살리는 길이며, 일꾼에게 양육받는 생명을 살리는 길인 것을 알기에 교회는 ‘생명양육’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만두국을 먹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교회 식구다. 놀랍게도 같은 작은 교회 사람들이 아닌데도 어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지, 식구보다 더 뜨거운 동지애가 느껴진다. 복음의 전쟁에서 맺어진 전우애(戰友愛)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겠다.
그리고 우리는 솔마랭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오래전에 취재를 했던 곳인데, 춘천에 올 때마다 꼭 다시 오고 싶었던 곳이다. 그 날이 오늘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슬기 자매님이 내 옆에 앉아 28세 후배를 향해 복음의 교제를 나눴다. 나는 옆에서 둘의 얼굴을 보았는데, 어찌나 뜨겁던지, 상당히 평범한 대화인데…. 내용은 이것이다. “한 영혼을 품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어요” 누군가를 양육한다는 일은 무엇일까? 최소한 마음속에 정전 사태가 일어나는 것보다 더 힘든 상황일 것이다. 슬기 자매님은 그것을 간증으로 교제했고, 28세 후배의 마음속에 그 간증이 스며들었다.
솔마랭 까페에서 나는 은주,옥주 자매님들을 만났다. 은주 자매님은 나와 같은 직업이었다. 기자로 현직에서 활동한다는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즉시 물었다. “춘천 한마음 교회에 어떻게 오셨어요, 얼마나 되었어요”라고. 그녀는 9년전에 이곳에 왔고, 행위로 구원을 받는 율법적 신앙생활을 하다가 춘천 한마음 교회로 다시 인도를 받으면서, “부활의 예수님”을 깨닫고, 인격적 신앙생활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처음 만나는 내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들의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허물 그대로 드러냈다. 주향 자매님이 그러하고, 슬기 자매님이 그러하듯, 그녀도 동일했다. 과연 허물이 간증의 빛이 되었다. 허물이 없는 간증은 무미건조한 지식설교다. 자기 힘으로 종교행위를 한 것을 “피똥신앙”이라고 그녀는 고백하면서, 부활의 주님을 알게 되니, 주님께서 자신을 끌어가고,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은주 자매님이 날 보며 이렇게 말했다.
“주일날 새벽에 마음의 갈등이 있을 때, 이것을 기억하세요. 지금 여기서 복음을 나눌 때 그 마음이 창훈 형제님의 진짜 마음이예요. 그 마음과 다른 생각들은 모두 가짜예요. 교회에 왔을 때, 지금 느끼는 그 마음을 항상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