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다가, 식당에서 밥먹다가, 겁이 덜컥났다. 옆의 테이블에서 어떤 아줌마가 돌맹이같은 말을 쏟아내는데 ‘걸걸걸’했다. 생긴게 멀쩡한 폼샌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은 격정적 언어들이 쏟아지는데 그 앞에는 나이 지긋한 남자가 있다.
“그렇게 갈쳤으면 판을 싹 쓸어야지, 그게 뭐야. 위로 뜨면 다 잡히지, 왜 그렇게 못 치는거야. 도대체 누가 그 따위로 갈쳤어!!!”
노름꾼의 냄새가 났다. 돈을 엄청나게 잃었던 것인가? 얼마짜리인데….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머리 뚜껑이 열린 것이다. 앞의 남자는 이번 사건의 연출자인 것 같았다. 여자가 아무리 화(火)가 나더라도 그렇지, 공공장소인 식당에서 혼자 독차지다. 내가 한소리 하려다가 그 불똥이 나에게 튈 것 같아서, 그냥 앞만 봤다. 육개장을 시켰는데, 깍두기가 씁쓸한 맛이 났다.
TV소리가 들리지 않길 원해도 TV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본의 아니게 들리는 것은 소음이다. 어찌나 큰 소리가 나던지, 남자가 더 울상이다. 구제불능의 그 아줌마는 성격결함!!!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것을 공공장소에서 멈출줄 모르고 30분이 넘게 토해내는데, 내가 가서 “무슨 노림판인데 그러세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자기 아들이 오늘 야구대회가 있었던 것이다. 4타수 무안타, 그것도 강투수를 만나서 거의 헛스윙을 했던 것, 코치가 욕을 얻어먹는 것이다.
깡패가 따로 없다. 그런 아줌마 밑에서 자란 그 아들은 도대체 ‘기(氣)’가 살아 있을까? 주눅이 들면 아이들은 스스로 창조성의 싹을 닫아버리고, 성장을 멈춘다. 성장을 멈춘 그 이유는 아줌마의 열불나는 그 성격때문인데, 그 아줌마는 알 턱이 없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해줘야할 것은 딱 2가지다. 정성의 거름과 기다림이다. 그런데 그 아줌마는 “이것이 왜 안자라!!! 빨리 커야지!!!”하면서 줄기를 쑥 뽑는 것과 같다. 뿌리뽑힌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어머머머머머~~~~ 태수 엄마, 그래~~~~ 우리팀이 이겼지~~~~ 호호호호호~~~~~ 우리 아들, 그럼~~~ 오늘도 출전했지~~~~ 우리팀이 승리했어~~~~ 태수는 언제 경기야~~~~”
그 아줌마가 갑자기 전화기를 대고서 소곤소곤 까르르르 웃는다. 이게 우리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자식사랑인가? 자식이 어디 부동산인가? 자식의 마음이 어떤지, 4타수 무안타를 얻어맞은 자식의 현재 상황은 어떤지 그런 것은 아랑곳없다. 코치를 닭달하고 들들들 복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닐텐데…. 이중인격의 가면을 보면서, 일그러진 내모습이 혹시 저런 것이 있나? 스스로 반성이 된다. 전화받는 자세도 고치고, 내가 무조건 옳다는 식의 강한 발언도 고쳐야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먹었다. 강하면 부러지는 것이다.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것은 아메바의 이분법적 해석일 뿐이다.
“내가 고용주야. 내가 돈을 주면 내가 시키는데로 해야지, 도대체 무슨 권리로 내가 시키는데로 못하는거야!!! 그럼 내가 왜 돈을 쳐바른 것인데…. 4타수 무안타가 말이 돼냐구!!! 그럼, 내가 왜 돈을 뿌려!!! 내 아들 돈으로 고등학교, 대학교 갈 정도는 돼!!! 내가 그 정도 돈을 못 쓸 것 같아? 진학은 진학이고, 실력은 실력이잖아!!! 내가 이래뵈도 야구계 5년이야. 딱 보면 알아. 돈 먹고 일은 안하는 그런 야구 나부랭이 다 알아…. 어제 술쳐먹고 놀았지? 시합있다고 하니까, 그냥 아이들이 배트 대충 쳐서 복궐복이라고 생각했겠지…… 이것봐!!! 돈을 먹었으면 돈값을 해야할 것 아니야!!!”
마지막으로 그 아줌마가 쏟아낸 말들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 통제불능 단어들, 어쩌면 나도 저렇게 살았던 것은 없는지 내 성격의 단면도 반성이 되었다. 가만히 스스로 반성의 거울을 비쳐보았다. 힐끔 얼굴이라도 쳐다볼까 싶었지만, 쳐다봤다가는 그 아줌마의 폭탄이 터질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얼른 밥값 계산하고 나왔다.
언어순화, 인격의 첫단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