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립 4.19 민주묘지,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민주혁명
기록리더 : 김보은
날짜 : 2015년 9월 13일
학교/학년 : 인수중학교 1학년 5반
취재장소 : 국립 4.19 민주묘지
취재제목 : 우리동네 문화탐방
취재내용 :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알아보고자 국립 4.19 민주묘지를 방문했다. 국립 4.19 민주묘지는 1960년 4월19일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부정과 부패, 독재 권력에 항거하여 싸우다 희생되신 분들이 잠들어 계신 성스러운 곳이다.
4.19 혁명은 8.15 광복과 남북분단 이후 누적된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모순에 맞서 학생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항거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또한 당시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를 강력 규탄하여 정권 교체를 촉발하였고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 시민 혁명이었다.
특히 4.19 혁명에 불을 붙인 사건은 김주열 학생의 시신발견이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공산당이 마산 시위를 사주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다 시위 중 행방불명된 16새 김주열 군의 시신이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첨한 모습으로 4월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분노한 시민들은 경찰의 만행과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마산에서 2차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김명하씨와 인터뷰
이날 가족과 함께 나들이 나온 한 분과 인터뷰를 했다. 서울 창동에 사시는 김명하(55)씨에게 4.19 민주 묘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우리 동네에 이런 역사의 문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겠지만 과거를 모르고는 현재를 잘 살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광복 70주년 이라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굉장히 슬픈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런 아픔을 또 한 번 느끼지 않으려면 젊은 세대들이 역사를 잘 알고 우리 주변의 작은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느낀점 : 사실 옛날에는 4.19 묘지가 있는지 몰랐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즈음에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4.19 묘지가 그냥 공원 같은 곳이라고 여겼는데, 역사를 알고 나니 뭔가 숙연해 진다. 나보다 몇 살 많은 언니오빠들이 민주화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항쟁했다는 것이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뭉클하다. 만약 지금 그때와 같은 일이 또 반복 된다면 현재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