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리더: 조현주 대표기자 / 국제문화교류봉사단 기록리더
날짜: 2015년 9월 27일 일요일
학교/학년: 야탑초등학교 6학년
취재 장소: 융릉과 건릉
취재 제목: 융릉과 건릉을 다녀와서……
취재 내용:
추석을 맞이하여 개봉 한지 11일 만에 300만 명의 관객 수가 돌파한 영화인 ‘사도세자’를 관람하게 되면서 사도세자와 그의 아버지 영조, 그리고 아들 정조에 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이 가게 된 곳이 화성에 위치해 있는 융릉과 건릉이다.
융릉은 사도세자로 알려진 장조(정조의 아버지)와 혜경궁으로 알려진 헌경황후 홍씨의 합장릉이다. 소론계 학자에게 학문을 배운 사도세자는 노론과 갈등을 일으키다가 1762년에 뒤주에 갇혀 죽게 되었다. 정조는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숭하고, 당시 양주에 있던 영우원을 융릉으로 옮겨 현릉원이라고 했다.
건릉은 조선 제 22대 임금 정조와 효의황후 김씨의 합장릉이다. 1899년 고종이 정조를 정조선황제로, 효의황후를 효의선황후로 추존했다. 원래 정조의 능은 융릉의 동쪽 언덕에 있었으나 효의황후가 승하하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곳에 합장하였다.
느낀 점:
영조는 그 당시 붕당의 한 일파인 노론의 힘에 의해서 즉위한다.
그래서 사림들의 대립을 막기 위해 완론탕평을 펼침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노론에 의해 휘둘리는 정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대신 정치를 경험해보는 것)을 시키는데 그 당시 주도세력인 노론은 이것을 반대하면서 영조에게 좋지 않은 말들만 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영조와 사도세자사이의 불화를 부추겼다.
이런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게 되고 죽게 된다.
역사를 딱딱하게 생각했던 나는 ‘사도‘라는 이 영화를 통해서 역사가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영특한 사도세자가 젊은 나이에 죽게 되어 그의 능력이 안타깝고, 또, 자기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의 행위는 옳지 않다고 본다.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는 52년이라는 조선시대의 최장기 집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