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와 바울…동역자의 긍정적 영향력
최초의 신약 성경은 마가가 기록했다. 베드로의 친척이며, 수행비서였던 마가, 그는 예수님이 로마 병정에게 붙잡히던 겟세마네에서 졸다가 알몸으로 줄행랑을 쳤던 청년이다. 마가는 조심스럽게 마가복음에 자신을 그렇게 묘사했다.
안디옥 교회에 이방인들이 전도되기 시작하자, 로마시민권이 있고 고향이 구브로인 바나바가 선교사로 파견됐다. 바나바는 ‘위로의 사람’이란 칭송을 받을 정도로 사랑의 사람이었다. 그가 안디옥 교회에 가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다소’로 가서 바울이란 그 청년의 생사 확인이었다.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어주기에는 과격하고 확고 부동한 바울이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바나바는 사랑의 사람이었으므로 인재의 발탁에 탁월했다. 바나바와 바울은 고향이 비슷했고, 같이 로마 시민권자였으므로 공감대가 있었다. 그때가 아마도 바울이 다멕섹에서 회심한 지 14년이 지난 시점일 것이다. 바울은 그렇게 고향 다소 일대에서 묻혀지냈었다.
바울은 강경파였고, 행동적 사람이었다. 산헤드린 의원은 지금의 국회의원과 같은 자격이었고, 어쩌면 당시는 종교국가였으므로 산헤드린 의원은 국회의원보다 그 직급과 명예가 더 높았을 지도 모른다. 예수의 시체를 빌라도에게 달라고 요청한 아리마대 요셉, 몰래 예수에게 강의를 듣고 갔던 니고데모도 산헤드린 의원이었다. 이러한 높은 직위의 바울이 다멕섹에서 예수님을 영으로 영접하고, 다멕섹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진했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예수의 제자층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었다. 제자들은 ‘바울이 스파이다’고 의심했고, 유대인들은 ‘바울이 배신자다’고 비난했다. 바울은 어디에도 몸을 둘 곳이 없었다. 제자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는 속에서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적극적으로 설교하자, 유대교와 평화적 공생관계를 원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울을 다소 고향으로 갈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바울은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바나바가 바울을 찾아냈다. 바울은 오랜 기간 스스로의 연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확신을 성경을 통해 입증하고, 전도하면서 살고 있었다. 소아시아와 유럽 및 로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세계적인 꿈을 가슴에 품고 고향에서 묵묵히 인내하고 있었다. 바울과 의견을 달리한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바울을 떠났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고 14년을 버텼던 것이다.
바울의 믿음과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서 견고하고 단단해졌다. 그러나, 그 사랑의 형상은 모서리가 굳세었고, 여전히 강경했다. 그러한 강경한 성격을 통해 예수님은 소아시아와 유럽, 로마에까지 복음의 초석을 놓았으리라. 1차 전도여행을 떠났을 때, 베드로의 수행비서인 마가가 바나바와 바울의 수행비서로 추천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사명이었던가.
그런데, 마가는 버가라는 지역에 도착하자 마자 나이 든 바나바와 바울을 두고서 예루살렘으로 급히 도망가 버렸다. 누가는 마가에 대해서 그렇게 기록했다. 바나바와 바울이 각각 자기 짐을 나눠서 감당했을 것이다. 첫 전도여행은 마가때문에 더욱 힘들게 진행됐다. 마가가 도망갈 것이면, 애초에 다른 사람을 뽑았을 것이다. 바울은 속으로 내내 마가를 막되먹은 놈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바울과 마가는 성격이 서로 정반대였다. 바울은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밀어부치는 행동파였고, 괴짜 마가는 부담되거나 고생될 것 같으면 도망치고 보는 몸사리는 성격이었다.
2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자, 바나바가 마가의 실수를 용서하고 다시 수행비서 사명을 주도록 바울에게 추천했다. 그 날밤 바울과 바나바는 심하게 다퉜다. 아주 심하게 다퉈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고향으로 떠나고, 바울이 실라를 데리고 2차 전도여행을 갔다.
바울, 다멕섹에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려고 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돌연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던 그러한 과격한 바울이 국회의원직도 사퇴하고 14년동안 초야에 묻혀 변방에서 복음사역을 하던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그 ‘동역자 바나바’와 심하게 다툰 후 그 얼마나 고된 마음의 통증을 겪었을까?
바울이 쓴 첫 편지 갈라디아서를 보면 그의 문장은 가서 패 죽이려는 그러한 행동적 사랑이 드러나 있다. 적극성, 그러나 인내의 부족… 용서와 사랑과 화해와 기다림… 바울은 그것을 바나바에게서 배운 것이다. 바울은 놀라울 정도로 훗날 사랑의 사도가 되어 있다. 매번 전도여행을 마칠 때마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해 ‘헌금’ 전달을 잊지 않았다.
[고린도전서 13장]=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첩보를 듣고서도 ‘예루살렘’을 고집했다. 모세의 율법과 예수의 복음에 대한 분명한 결정을 해야만 하는 중대한 스스로의 결심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예루살렘의 방문을 회피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결단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붙잡힐 것을 알면서도, 붙집힐 것이라는 계시를 받으면서도 예루살렘을 고집했다.
[사도행전 20/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이렇게 변화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던 설교자에서 모든 전도 여행을 마친 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도로 변화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죽을 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셨던 그 길로 기꺼이 가겠다는 사랑의 고백, 사랑의 방향이었던 것이다.
바울이 동역자 바나바의 영향이 없었다면,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었을까? 동역자의 힘은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낳는다. 바울도 알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뉘우치고 뉘우쳤을 것이다. 바나바가 마가를 용서하자고 했을 때 거절했던 자신의 뾰쪽한 모서리 성격에 대해서… 어쩌면 마가 역시 다소에 묻혀 지내던 바울의 과거 모습과 같았을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바나바를 통해 바울을 끄집어 내준 것인데…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의 수감생활에서 마가를 용서하고, 마가를 수행비서로 채용하게 된다.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난 바울이었던 것이다.
나 역시 마가처럼 도망간 전적이 많아 바나바와 바울의 사연이 더더욱 가슴깊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