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자가 됐어요. 4글자 어떻해요?
자소서 첨삭을 간혹 묻는 학생들이 있다. 4자를 줄여야한다면서, 첨삭방법을 물어본다. 난, 폭소가 터졌다. 교육부 정책이 얼마나 한심한지, 황당무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의 단위가 ‘글자수’로 뒤바뀐 자소서 쓰기, 학생부 쓰기가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을 죽이고 있다.
글의 기본 단위는 ‘단어’다. 글자수로 제한하는 것은 교육부 입장에서 편하자고 하는 것이다. 마치 학생들의 머리수로 계산해서 학교를 판별하고, 사람의 숫자로 선거구를 나누고, 모든 것은 사람숫자로 계산하는 그것과 거의 비슷하다. 자칫, 유물론에 빠지겠다. 사람을 몸무게로 단정했던 그 철학자처럼!!!
삽겹살 600g처럼 자소서 1000자, 자소서 500자, 창의적 독서활동 700자로 제한하는 것을 보면, 학생들은 998자로 맞춰서 글을 쓴다. 황당한 해프닝은 ctrl Q+I의 기능을 더욱 높였다. 글자수를 최대한 맞추면 주관식 단답형에 정답을 쓰기라도 한 듯,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잘 모른다.
정답은 오직 하나다. 차라리 문제를 ‘본인의 자화상을 그리세요’라고 한다면 간단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화상을 그리라고 하니까,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등장하고, 얼굴만 그린 학생과 다리부터 모두 나온 학생, 배경이 화려한 학생, 그림의 크기도 천차만별이다보니 심사기준이 들쑥날쑥 객관성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부분심사이다. 4가지 그림을 그리는데, 1개의 도화지에 그리세요.
1. 머리를 창의적으로 그려주세요.
2. 가장 멋진 몸매를 그려주세요.
3. 사람이서있는 풍경을 그려주세요.
4. 계절을 선택해서 날씨를 표현하세요.
문제는 4문제인데, 사실은 1문제다. 어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을의 풍경에 자연속에 있는 장면을 그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각각 구분해서 그려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4가지 작품인데, 글은 4가지가 합해져서 1개가 되어야한다. 이것이 그림과 글의 차이다.
4가지 문제는 1문제다. 사람과 풍경을 그리는 것이고, 인물화와 풍경화를 계절과 함께 그리는 것이다. 작품 1개를 그리는 것이지, 인물화 각각, 풍경화 각각, 계절풍경 각각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심사기준을 각각 나뉘어서 자세히 알려준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자소서는 오직 1문제이고, 각각 3~4부분으로 나뉘어진 것은 ‘자신’을 보여주는 부분들이다. 1개의 도화지는 곧 ‘진로희망’을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진로와 학과’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자신의 진로와 선택한 학과, 장래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이 학교생활에 해왔던 일들을 감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1000자와 500자가 얼마나 미련한 제한인지 알 것이다.
자소서를 쓸 때는 반드시 학교생활 동안 썼던 과목별 결과물을 책상앞에 두고서, 한쪽에는 학생부를 펼쳐두고서 그림을 그려야한다. 자신의 꿈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건들을 그 중에서 뽑아야하고, 에피소드를 찾아내야한다. 대략 10가지 글감을 찾았다면 그 중에서 글을 쓰면 된다.
없는 곳에서 있는 것을 만들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니, 창조주의 위대한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낫다. 돈도 무일푼에서 일확천금을 만들 수는 없다.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밑천없이 장사하는 사람들은 성공하기 힘들다. 학생들에게 자소서의 밑천은 바로 학교생활에서 제출한 서류(과제물)이다. 또한 봉사활동과 기타 활동에 대한 다양한 사진들을 컴퓨터로 돌아보면서 글을 써야한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고1-1 고1-2 고2-1 고2-2 고3-1의 폴더가 각각 존재해서 사진들과 제출서류가 일목요연하게 한글로 작성되어 있어야한다. 물론, 수기로 작성한 서류들도 차곡차곡 모아져 있어야한다. 그것이 바로 자소서의 글감이고, 1000자의 자소서를 써야한다면, 원고매수로 대략 6매에 해당하므로 6단락을 작성하면 된다. 1개의 사건을 6단락으로 작성할지, 혹은 연관성있는 사건들 6개를 찾아서 연결해서 작성할지는 글감에 따라 결정해야한다.
1004자의 첨삭을 묻는 학생의 전체 글들은 4질문의 설명들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와 배경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림으로 본다면, 황당하고 어이없는 모습일 것이다. 글로 표현되어 있으니 잘 안보일 뿐이다. 전체글을 그림으로 보는 나로서는, 4글자 줄이는 법을 묻는 학생에게 전체 글을 모두 첨삭하도록 조언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없어도 되는 강조문장을 찾아서 삭제하도록 알려줬다.
* 생각의 기본단위는 단어이고, 문장은 단어의 연결이다. 또한 칼럼의 기본단위는 단락이다. 대학교에서 요청하는 자소서는 ‘칼럼’을 말한다. 결국, 단락개념으로 풀어야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얻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