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임원 리더쉽 캠프에 다녀왔다. 야탑동에 위치한 ‘야탑초등학교 임원 리더쉽 캠프’는 학생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였다. 축소확대의 법칙에 따라, 국가의 대통령이 있듯이 ‘전교회장’이 존재하고, 국무총리 혹은 국회의장이 있듯이 전교부회장이 있었다. 학년별 회장단도 존재했다. 사회조직의 축소판이 그대로 축약된 형태다.
임원(任員)은 ‘책임진 회원’의 줄임말이다. 어떤 회(會)에서 으뜸은 ‘회장’이고, 나머지는 회원이다. 회원중에서 ‘회장’이 뽑힌다. 임원 리더쉽 캠프에서 학생들은 모두 “리더는 책임지는 인물”이라고 발표했다. 러더는 통솔권한보다는 책임지는 무게감의 이미지가 분명 강하다.
과거 ‘내탓이오’가 천주교 문화운동으로 펼쳐진 적이 있었다. 내가 책임진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책임’에 대한 댓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옆 친구가 화병을 깼는데, 그냥 말로만 ‘내가 깼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쉽지만, 화병을 깬 것에 대해 화병값을 물어줘야한다면, 어떤 반장이 친구의 잘못을 뒤집어쓸 수 있을까?
“이거 누가 했어?”
이 말에 대해 ‘책임’과 ‘진실’은 상호 충돌한다. 과연 화병을 누가 깼는지 학교 선생님이 물었다고 하자, 그것에 대한 답변은 ‘깬 사람’을 묻는 것인지, 혹은 ‘화병을 깨고도 수습을 하지 않은 것’을 묻는 것인지, 정확한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리더가 되길 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사뭇 진지해진다. 나는 그 답을 모르겠다. 차라리 화병을 누가 깼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 낫겠다.
깨진 화병에 대해서 화병값을 물어줄 사람은 ‘부모’다. 그래서 부모는 언제나 자녀에 대한 리더쉽의 권한을 갖는다. 책임은 이런 것이다. 말과 행실로서 본인에게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니, 책임감은 말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는 것이다. 민방위 훈련을 할 때, 간혹 ‘대리출석’이 있는데, 대리출석도 ‘대신 책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임을 졌을 때는 본인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대로 당해야한다. 실제적 역지사지(易地思之)인 것이다.
책임(責任)의 책(責)은 빚을 뜻하고, 임(任)은 ‘맡다’는 뜻이다. 책임은 ‘빚을 대신 갚아준다’는 것이다. 반장이 된다는 것은 그 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학생들의 잘잘못에 대해서 대표로서 받는 것이다. “내가 안했는데 왜 내가???”라고 발끈할 수도 있겠지만, 학급이 1등을 했다면 반장이 대표로 영광의 자리에 올라서 ‘상장’까지 받으니, 잘못만 따질 것은 아니다. 책임은 이래서 권리와 함께 동행한다.
임원진 리더쉽 캠프가 끝나고 교실을 떠나지 않은 3사람이 있었다. 야탑초등학교 강숙희 교무부장과 담당 교사, 김선희 이사장이다. 마치 자녀들이 신나게 놀고 일어나면, 놀던 자리를 치우는 부모의 온화함처럼, 야탑초등학교 교무부장과 담당교사는 교실마다 꼼꼼히 살피고, 학생들을 바래다준다. 마치 집에서 학생을 배웅하는 부모처럼,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을 집으로 배웅한다.
학교안에서, 학교밖에서 책임진 교육리더들이 있음으로 ‘야탑초등학교 임원 리더쉽’이 순조롭게 펼쳐진 것 같다. 바람처럼 왔다가 흐믓한 미소로 둘러본 오승균 교장도 ‘듬직한 책임리더’라고 할 것이다. 모두의 힘이 뭉쳐 아름다운 ‘캠프의 밥상’이 차려졌던 것 같다. 덕분에 나도 ‘리더의 책임감’의 맛을 새롭게 맛보게 되었다. 마치 고향집 어머니 밥상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