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녀왔더니, 집앞에 어머니의 사랑이 놓여있다. 고흥 고향에서 보내온 반찬 택배다. 어머니는 설날 떡국과 쑥떡과 김치와 생선찌개와 각종 반찬을 통째로 보내셨다.
나의 어머니는 한동안 내가 반찬을 보내달라고 하지 않아서 속상해 하셨다. 나는 어머니께 미안해서, 보내오신 반찬을 번번히 버릴 수 밖에 없어서, 그것이 속상해서 반찬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이고,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자식에게 반찬을 보내고싶은데 그 역할을 못하니 속이 상하신 것이다.
아마도 중학교 3학년때로 기억된다. 내가 순천고등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하자, 담임 선생이 말렸다. 그곳은 매우 특별한 사람, 즉 학급에서 1~2등을 해야 갈 수 있는데 왜 그곳을 가느냐는 것이다. 나는 ‘숭고’(숭고한 고등학교)인 것으로 당시 착각하고, 거기를 가야지 뭔가 인생이 풀릴 것 같아서 결정했는데, 의외로 주변의 시선은 냉담했다. 당시 나는 중학교 수학대표였었고, 고흥군에서 수학경시대회로 1등까지 했는데, 수학만 잘해서는 순천고를 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의 어머니는 나를 믿어주셨고, “하면 된다”고 하시면서, 겨울방학 내도록 반찬을 싸주시면서 나를 응원했다. 순천고는 본고사를 봤는데 순천고 응시생들만 별도로 남아서 학교에서 공부를 했었다. 지금으로 보자면, 과학고와 자사고에 입학하려고 중3때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던 것과 같다. 그때부터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반찬을 보내시는 것이 낙(樂)이었다.
순천고에 입학한 것은 기적이다. 그 당시 나는 기억한다. 모든 시험이 매우 어려웠고, 그 중에서 특히 수학이 어려워서, 수학을 잘본 사람은 모두 합격이라는 말이 돌았다. 대부분 4점, 5점 이랬다. 나는 20점 만점에 18점을 맞았던 것 같다. 어려웠지만, 풀만 했다. 그래서 합격한 순천고등학교, 나의 어머니의 응원과 새로운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점점 성숙해졌던 것 같다.
아주 문득, 나는 밖에서 밥을 사먹는 것이 너무 익숙해졌고, 요즘 들어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밑반찬에 밥을 해먹기 시작했다. 자취(自炊_스스로 불을 피워서 밥해먹기)를 하듯 원룸에서 밥을 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엄마, 이제 반찬 보내요. 김치가 금값이네. 떡국 보낼 때, 김치 잊으시면 안돼요. 김치 꼭 보내시고, 혹시 동치미 없어요? 동치미가 정말 맛있던데, 파김치도 있으면 보내고, 갓김치는 없나요? 많이 듬뿍 보내세요”
내가 힘줘서 말하니, 나의 어머니는 말투에서 힘이 엄청 들어간 느낌이다. 마치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순천고 갈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그 느낌이시다. 인생은 불가능이 없다. 하면 되고, 안하면 안되는 것이다. 왕후장상 영유종호 (王侯將相寧有種乎)라고 했다. 진시황제가 죽고, 최초 난을 일으켰던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했던 말이다. 고려 무신정권 시절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도 같은 말을 했었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그 당시 사회제도를 향한 ‘바위치기’에 그쳤으나, 지금은 신분제도도 없고 헌법으로 개인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사회이니, 못할 것이 무엇이랴!!!
교회에 다녀왔더니 어머니의 사랑이 놓여있다. 풀어보니 세월을 건너온 그 정성이 원룸이 벌써 고향이다. 쑥떡 향내음은 나의 어린시절을 불러오고, 김치를 썰어서 작은 통에 담고, 어머니께 감사 전화도 드리고, 저녁밥을 먹는데 처음으로 가스불에 냄비를 올려서 국을 끓였다. 파를 썰려고 하니 없어서 도마도 하나 구입하고…..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낙지’이고, 나머지 생선의 이름은 전혀 모르겠다. 생선은 한가지 종류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몸통과 꼬리의 비닐을 비교해보니 서로 다르다. 짐작컨대 ‘잡탕’이다. 어머니가 보내신 생선 잡탕을 펄펄 끓여서 저녁밥을 먹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인생은 열정이 정말로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 나의 하루는 행복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그 사실이 나를 존재케 한다. 필요없는 존재는 불필요해서 그저 쓸쓸히 침묵할 수 밖에 없다. 오늘도 책집필을 뚝딱뚝딱 해서 전자책도 2권 내고, 다문화 관련 종이책도 1권 편집하고, 교회에 가서 내가 살아온 인생의 삶을 이야기 해달라고 해서 함께 대화하듯 말하고…… 돌아보니, 오늘 하루의 삶이 펄펄 끓는 생선찌개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라면도 뿌셔뿌셔 생라면으로 먹으면 밋밋하다. 라면을 펄펄 끓여서 국물을 함께 먹어야 속이 후련한데 하물며 인생이랴.
오늘도 내일도 불과 함께 열정으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