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0, 95100 그 모호함
나는 늘상 29와 30, 95와 100 중간에서 갈등한다. 오늘도 바우하우스 근처에 갔다가 봄을 준비하는 옷 몇벌을 사면서 역시나 ‘29’와 ‘30’은 날 망설이게 한다. 허리 사이즈 29인치는 좁고, 30은 넉넉한 나의 둘레는 입고서 사더라도 그게 마음에 썩 와 닿지는 않는다.
패션 전문가들은 바지를 허리둘레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단순함이 있는 듯 하다. 바지 길이는 세탁소에서 4000원을 주고서 줄여 입을 수 있지만 허벅지에 달라붙는 옷과 통의 넓이, 바지의 규격은 허리둘레로만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바지는 29와 30에서 맞으면 나머지도 맞다.
와이셔츠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95를 사면 전체 품이 적당하게 맞는데, 목둘레가 맞지 않다. 목둘레를 맞추려고 100을 사면 옷이 전체적으로 맞지 않다. 바지 길이처럼 와이셔츠는 팔길이를 줄일 수는 있지만, 와이셔츠의 전체 품은 줄일 수가 없다. 이 둘의 엇갈림은 나로 하여금 95와 100의 두 사이즈 와이셔츠를 적당한 느낌으로 입게 했다.
“손가락 1개가 넉넉히 들어가야 와이셔츠 목둘레라고 할 수 있죠. 말할 때 툭 튀어나온 목젓때문이예요”
영어로 아담스 애플로 불리는 그 목젖이 바지둘레와 와이셔츠 둘레의 본질을 다르게 만든다. 바지는 허리에 딱 맞아야 좋다. 숨을 쉬면서 적당히 맞아야 좋다. 그런데 목둘레의 와이셔츠는 그와는 또 다르다. 나는 지금까지 목둘레에 완벽한 와이셔츠가 나의 셔츠라고 착각했다. 95를 입으면 맞기도 하고 간혹 좁기도 하고…. 100을 입으면 목둘레가 편하긴 한데 뭔가 허전한…. 그런데 알고보니 손가락 1개가 들어가서 여유있게 맞는 와이셔츠가 적당하다는 것. 나의 와이셔츠는 100이 목둘레로 맞았던 것이다.
사람은 이처럼 어떤 것을 명확히 아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평생 살아오면서 95와 100 사이에서 늘상 고민했던 옛날을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패션에 무관심했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게다가 와이셔츠의 색감을 떠나서 규격이 목둘레로만 규정할 수 없음을 다시금 알게 됐다. 세상이 규정한 그 치수에는 사람이 개성적 스타일을 담을 수가 없다.
사람마다 목이 굵고 몸통이 두툼할 수도 있고, 팔길이가 매우 짧거나 혹은 그와 반대로 길 수도 있다. 어깨가 근육이 발달해서 상당히 클 수도 있다. 와이셔츠에는 상당히 많은 변수들이 포함된다. 목길이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통상 와이셔츠는 95와 100으로 목길이를 의미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렇다. 몸통 둘레가 95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지 길이도 양복을 사게 되면 통상 세탁소에 가서 입어보면서 길이를 쟀다. 몇해전 나의 바지들을 모두 꺼내서 비교해보니 길이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2~5cm를 두고서 모두 둘쑥날쑥했다. 어째서 그러할까, 나는 깊게 고민하면서 그때 비로소 바지길이의 인치를 알게 됐다. 나는 38.5인치다. 그런데 이것도 구두를 입고서 구두 뒤를 덮는 길이이고, 바지의 밑퉁이 좁은 경우 길이가 길면 ‘울어서’ 주름이 잡혀 보기가 민망했다. 다림질을 해도 옷이 엉망이니 나는 그것을 보면서 지속적으로 생각해보니, 38.5가 나의 바지길이가 아니라 바지마다 쫙 펴지는 길이가 다르게 존재한 것을 알게 됐다. 어떤 바지는 36.5인치로 입어야 발목높이에서 멋있게 빠질 수 있었고, 어떤 것은 구두를 살짝 가리면서 바지가 멋있게 펴졌다. 1~2인치의 차이로 바지의 운명이 결정됐다.
내가 조금만 신경쓰면 완벽은 문장의 마침표를 찍듯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냥 대충 하게 되면 평생 그렇게 입고 다녔을 것인데, 이제는 조금 더 신경쓰면서 작은 차이로 나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싶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대충 하면서 그냥 해치울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해야할 일이라면 좀 더 세밀하게 신경써서 완벽의 건축을 완성하고 싶다.
나의 바지 치수는 29도, 30도 아니다. 나의 바지 치수는 나의 바지 치수다. 와이셔츠도 그렇다. 95도 100도 아니다. 단지 허리 사이즈는 30이 넉넉하고, 목둘레는 100이 맞다. 아주 꼼꼼하게 따지면서 그것을 확인한 결과 얻어낸 통계치이다. 이처럼 모든 사물과 사건은 관심과 집중으로 그것의 본질을 파악하고, 기성품(旣成品)을 약간 변형해서 자신의 몸에 완벽히 맞출 수도 있다. 기성품이 맞지 않다고 탓할 것도 없다. 맞지 않은 부분은 약간만 고치면 맞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고칠수 있는 안목이다.
봄이다. 오늘 겨울옷을 몽땅 옷장서랍속에 넣고, 봄과 여름을 준비하는 옷들을 꺼냈다. 나의 방에 찾아온 계절의 봄은 옷에서 아지랑이가 올라온다. 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2016년 내가 살아낼 수많은 꿈의 잎새들과 희망의 꽃들과 보람의 열매들이 벌써 보이는 것 같다. 지난해, 추웠던 냉랭함도 모두 사라지고 올 한해 행복이 강물처럼 흐르길 기대하며, 나의 밥솥은 이렇게 오늘도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