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선거가 시작됐다.
내가 만약 식민지 치하에서 태어났다면, 아주 복잡한 과도기(過渡期)의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 권력을 잡고 있는 자가 만약 일본(日本)이었다면 더더욱 고달팠을 것 같다. 친일파(親日派)는 권력과 함께 했던 집단을 의미한다. 일본이 권력을 잡고 있었으니, 친일파는 당시의 집권여당에서 공무원 활동을 했던 모든 인물들이다. 권력과 민족과 지식과 문화와 사상이 모두 뒤엉킨 그러한 혼돈의 시대는 ‘암흑’(暗黑)이다.
중국에서도 이러한 시대가 있었고, 물론 지금도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급부상하는 불안한 시대가 전운(戰運)을 감돈다. 뇌관(雷管)이 어디선가 터진다면 터질 수도 있는 불안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얼음이 확 얼었으면 상관이 없는데, 살얼음판을 걷다보니 깨어질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불안함위에 존재한다.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그때도 그러했을 것이다.
별의별 당(黨)들이 출몰했다고 하니, 각종 이익과 이권으로 뭉쳐서 무엇을 목적으로 선거에 출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권자(有權者)들을 괴롭히며 혼동시킬 목적으로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과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만 해도 그렇다. 도대체 누가 누군지, 어떤 당이 어떤 당인지 이렇게 불명확한 때가 또 있었을까? 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혼동될 것 같다. 아마도 상당수 표가 ‘민주당’에 몰릴 확률이 높다. 더불어민주당이 마치 “짝퉁”의 분위기가 짙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누군가 ‘함께하는 민주당’이라는 당명으로 등록을 해서 더불어민주당을 괴롭힌다면 아주 곤혹스러울 것 같다.
권력을 잡게 되면 혜택이 많으니까 모두가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맛이 없고, 이익이 없다면 그들이 그것을 할 턱이 없다. 생기는 것이 있으니까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유권자들을 위해서 진정성있는 정책을 펼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전자제품도 서비스가 좋아야 그 브랜드 가치가 우수한데, 정치인들이 뭉쳐진 ‘당’(黨)은 진실성과 약속이행에 있어서 무익(無益)의 대명사로 평가받는데, 여전히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선거(選擧)는 뽑아서 올린다는 의미다. 과거 전쟁이 치열했을 때, 대표격으로 장수를 선출했는데, 신앞에 누구를 보낼지 물어본 후에 자격자를 보냈다. 選은 2사람을 뽑아서 그 중에서 1명을 가린다는 의미다. 확률로 보자면 50%이다. 擧는 2명중에서 뽑힌 1명을 들어올려서 대표로 삼는 것이다. 전쟁을 책임지고서 적군과 대표격으로 나가서 싸웠던 인물이 바로 ‘선거’(選擧)에 당선된 인물이다.
각 지역마다 대표 1명을 뽑는 이번 총선(總選)은 대선(大選)의 전초전과 같아서, 어떤 당이 국회를 점령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2년이 좌우될 것 같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이미 레임덕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 공천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이번에 너무 무리수를 뒀기 때문에, 과반수 확보를 못한다면 청와대까지 그 역풍이 휘몰아칠 것이다. 북한의 변수, 미국의 변수, 중국의 변수가 악재로 작용한다면 보수당이 과연 계속 집권할지도 의문이다.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철새처럼 선거철에만 지역구에 자주 나타나서 인사를 하는 그런 정치인들이 대부분인 요즘 시대에, 과연 평상시에 시민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혁명을 일으킬 그런 인물은 없을까? 지역에 머물면 당에서 활동을 못하고, 국회에서 활동을 못하니까 그것도 문제인가?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결국 그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뽑아준 것인데, 지역은 등한시하고 왜 국회에서만 엉뚱한 법률이나 상정하고 그럴까? 정말로 지역을 위하고, 근원적으로 경제살림을 걱정하면서 자신이 속한 조직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그런 정치인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