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에 좋았더라
창세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다. ‘보기에 좋았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흡족함과 만족감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도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 일의 성취감을 정말로 맛보심을 알 수 있다. 음식도 맛있어야 좋고, 자기가 좋아서 해야 그 일이 좋은 법이다.
중심인물, 중심민족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인물을 의미한다. 세상속에 많은 민족이 있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민족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마음이 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과 사연이 얽혀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이 곧 진로이다. 진로는 “너 커서 뭐가 되고싶어”이다. 이는 다른 말로 “너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야”와 같고, “너는 요즘 뭐가 가장 좋아? 취기가 뭐야? 특기야 뭐야?”이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면 그곳에 열정이 붙고, 누가 막아도 그 일을 하고야 만다. 취미를 진로로 정한 인물은 성공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137억년의 아주 길고도 긴 우주의 시간으로 우주를 만들었다. 137년이 아닌, 137억년의 아주 길고도 긴 우주의 시간을 하나님께서 견뎠던 그 이유는 ‘좋아서 행한 일’이어서 그런 것이지 않을까?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넷째날…. 모두 좋았던 하나님처럼 사람도 자신의 삶을 ‘좋아서 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열정이 붙지 않을 수 없다.
# 환란과 행위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있다. 땅을 바꿔서 그것을 생각하다는 의미다. 어떤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확인할 때는 그 당사자의 입장을 확인해야한다. 유언비어는 발생의 근원지가 늘상 ‘정의로움’ 보다는 ‘비열함과 권모술수와 뒷통수’에서 출발한다. 경쟁자에서 ‘허위’(虛僞)에 근거해서 상대를 모함할 때가 많다.
성경에도 보면, 욥이란 인물이 나온다. 욥이 환란을 당하자, 친구들이 와서 위로를 하면서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라”고 조언한다. 환란은 곧 사람의 죄로 발생한다는 기본논리에 근거해서 욥에게 신앙의 본질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은 신앙의 본질로 욥은 ‘하나님을 향한 근본의 심정’을 지켰다. 하나님과 사탄의 비밀도박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도박(賭博)처럼 욥이 공중에 붕~~ 던져졌고, 사탄은 ‘욥의 불신’에 걸었고, 하나님은 ‘욥의 절대믿음’에 걸었다. 욥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욥은 정말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나 그 마음의 표면은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오, 가져가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과 사랑, 신앙인이 가져야할 끝없는 가치가 바로 이것이지만, 쉽지 않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도 수많은 사건의 경우수를 직면하는데, 그 본질을 알려면 늘상 ‘역지사지’로서 이해를 해야한다. 그래야 보다 본질속 본질에 접근할 수가 있다.
# 희생과 영광
희생(犧牲)과 영광(榮光)은 서로 정반대인데, 이 둘의 가치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다윗, 이성계, 영조, 한신의 4인물을 통해 보면 사람의 처세술을 배울 수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 초대왕국의 2번째 왕이다. 본래 이스라엘은 고조선처럼 제정일치사회였고, 연맹부족국가(UN 또는 미국처럼 연합국가)였다. 작지만 강했던 12부족국가 정치 시스템으로 움직였는데, 이스라엘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요구했고, 사무엘을 기점으로 종교왕과 정치왕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게 세웠던 왕이 사울왕이다. 그런데 사울왕이 변질되면서 사무엘과 의견충돌을 하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지 않았다. 그래서 통일왕국의 2번째 왕으로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 ‘역성혁명’과 같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사울은 다윗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 호시탐탐 노리게 된다.
다윗은 그때마다 이리저리 숨어다니면서 도망쳤고, 급기야 블레셋 민족으로 도망쳐서 ‘미친 놈’처럼 옷을 헝클어트리고, 평범하게 살았다. 적국에 숨어서 지내야했던 비루한 다윗은 결국 사울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의 2번재 왕으로 추대되었다. 만약 다윗이 블레셋 민족속에 숨어지내면서 ‘스스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였다면, 적국에서 암살을 당했을 확률이 높다.
이성계도 그러했다. 고려시대는 아무리 불안해도, 고구려의 피를 이어받은 절대왕권이었다. 이성계라는 군인이 과연 고려를 없애고 조선을 새롭게 창건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고, 반역죄에 해당되는 사건이다. 그래서 이성계는 철저한 비밀주의 속에서 세력을 확보하고, 사병을 구축하면서 정도전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 건설에 많은 공을 들였다.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를 보더라도, 이성계의 본심은 고려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정치대개혁을 꿈꿨던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상황과 흐름이 역성혁명으로 흐르다보니, 결국 이성계가 왕이 되면서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정치제도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영조는 조선시대 가장 위대한 성군의 반열에 들어간다. 세종대왕처럼 백성들을 위한 업적을 많이 세운 왕이 영조이다. 그런데 영조는 경종이 왕으로 재위하던 시절에 ‘군’(君)의 위치에 있었으니, 그 목숨이 절벽에 놓여 있었다. 이방원이 방석과 그 형제들을 죽이면서 결국 왕권을 차지하듯이, 연잉군은 언제나 제거대상이었다. 왕보다 더 똑똑한 종친들은 위험인물일 수 밖에 없었다. 연잉군은 이런 이유로 ‘술과 여자’에 푹 빠져서 지내게 된다. 누가 봐도 망가진 인생이고, 누가 봐도 총명함이 사라진 인물로서 인생을 허비하는 그런 사내로서 살았던 것이다. 어느날 기회의 새가 날아오기까지….
한신도 그렇다. 중국의 한나라를 세우는데 한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한신의 업적은 한나로 초대왕 ‘유방’을 도와서 항우를 없앴던 것이다. 이러한 한신도 권력을 잡지 못했을 때는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라가라면 기어가야하는 그런 기구한 운명이었다.
항우 밑에 있었을 때도 그렇게 큰 빛을 못 봤지만, 유방이 항우에게 패하면서 탈출할 때, 유방의 측근 소하가 한신의 인물됨을 파악하고서, 그때 스카웃한다. 그리고 ‘군대 총사령관’을 맡긴다. 이때부터 한나라는 군대조직이 새롭게 개편되면서 항우를 상대로 대전쟁을 펼치고, 결국 승리의 분깃점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