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아니면 다문화를 말하지 말자.
지구촌 국제문화 축제 현장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결혼문화 축제현장이었고, 이색적인 풍경들이 많았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미소’(微笑)였다. 피부가 다르고, 옷차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데, 모두들 서로를 향한 반가움의 웃음, 미소는 만국 공통어라는 말이 실감났다.
한켠에서 명지대 국제교류경영학 전공자들의 봉사활동이 진행됐다. 비가 곧 쏟아질 듯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추구하는 열정에 대해서 몰입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와 송혜교가 말했던 ‘자신의 직업을 향한 열정이 곧 애국심“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국가를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곧 ’봉사의 마음‘이다.
정지윤 명지대 교수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봉사활동을 통한 다문화 가정의 문화정착’은 다문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다문화 가정을 ‘문제있는 가정’으로 해석하기 일쑤다. 비리(非理) 청소년처럼 그러하다. 피상적인 문제를 문제로만 봐서 그렇다. 그러한 문제가 왜 생겼는지에 대한 근본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상당히 부족하다. 다문화가 왜 문제인가?
오랜세월 ‘흑인과 백인의 차별성’은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면서도 우리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차별을 받아드리고 있다. 백인선호사상은 마치 사대주의처럼 우리안에 자리잡고 있다. ‘다문화’는 다양한 문화로서 ‘자문화’의 반대개념으로 활용되는데, 다문화 가정에 왜 ‘미국과 영국과 일본의 가정’은 넣으려고 하지 않을까? 이 자체가 이미 외국에 대한 차별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접근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충돌할 수 밖에 없고, 다름의 문화가 어떻게 조화롭게 살 것인지는 ‘다름의 인정’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한국문화와 다른 그들의 문화를 ‘틀림’으로 전제하고서, 그들의 것을 무조건 고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삼팔선이다.
이러한 다문화 가정에 대한 문화적 이해에 가장 필요한 것이 ‘봉사활동’이다. 봉사활동은 상대방을 돕거나, 혹은 도움을 받는 것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교감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다문화 가정들이 만약 한국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문화적 감동이 일어나겠는가?
게다가, 한국에서 다문화 전공자들이 다문화 가정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봉사는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남을 돕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교육적 봉사와 재능적 봉사와 경제적 후원의 봉사로도 서로가 교감할 수 있다면 다문화는 ‘따뜻한 감성의 문화’로 점점 아름다워질 것이다.
단군왕검의 어머니는 ‘곰족’이고, 아버지는 환웅으로 이방민족으로 알고 있다. 선진문명을 가진 청동기 문물을 가진 민족의 집단이라고 삼국유사는 말한다. BC2333에 세워진 단군왕검부터 이미 ‘다문화 가정’이고,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도 인도의 공주와 결혼해서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우리나라 500만명이 넘는 김씨의 시조(始祖)는 다문화 가정이다. 이처럼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다문화 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가 서로 하나가 되어서 아름다운 문화를 만드는 것은 수소와 산소가 만나서 물을 만들 듯 우리의 일상에서 매우 소소하고, 필수적인 활동임에 틀림없다. 나의 의견과 다를 사람과 만나서 서로 의논할 때, 다르다고 화내기전에 왜 그 사람은 그런 의견을 냈을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의 변화를 이룬다면 그것이 다문화의 아름다운 변화라고 생각해본다.
나의 다문화는 나로부터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