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화 7회 – 배신(背信)과 당랑박선(螳螂搏蟬)
명나라 사신을 암살하는 임무를 맡은 옥녀와 박태수와 강선호. 강선호는 포도대장으로, 경찰청장의 위치면서 체탐인(스파이)의 우두머리로서, 국정원장을 맡고 있다. 이 정도 위치라면 부하직원들에게도 그 신망이 두터워야하는데, 윤원형의 부당한 명령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는 내도록 ‘저런 놈’이란 육두문자가 나올 정도다. 어떻게 저렇게 권력의 기생충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옥중화 7회는 ‘누가 배신자인가’라는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박태수는 윤원형의 명령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스승을 암살하지 않은 죄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서 20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조선의 국가는 박태수를 ‘역적’으로 못박았다. 문정왕후가 박태수를 통해 명나라 사신을 암살하려고 사면(赦免)을 시켰는데, 박태수가 사신을 암살하는 그 순간, “윤원형이 역적이다”라고 말한다.
윤원형이 ‘비밀지령’을 강선호 포도대장에게 내릴 때,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이름으로 내린다. IS(이슬람 무장세력)는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일 때, 그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거짓의 교리’에 현혹되어서, 폭력을 정당화한다. 윤원형이 ‘종묘사직’을 위해서 박태수를 없애야한다고 했는데, 과연 누가 배신자(背信者)인가? 누가 역적(逆賊)인가?
권력의 속성은 칼끝처럼 예리하고 힘이 강하다. 그렇다고 모든 권력자가 칼날처럼 무자비한 것은 아니다. 윤원형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그런 인물은 ‘신의’(信義)가 없다. 자신에게 손해가 올 것 같으면, 자신을 위해서 일했던 자들을 ‘도구처럼’ 그냥 버려버리니, 게다가 이용한 자를 오히려 ‘간첩죄’로 누명씌워서 가둬버리니, 종묘사직(宗廟社稷)이 온전할 수 있을까?
배신(背信)은 ‘신의’를 배반한 것을 말한다. 권력을 배반한 것이 ‘배신’(背信)이 아니다. 신념(信念)을 배반한 것이 곧 ‘배신’(背信)이다. 자신이 항상 추구하는 그 신념(信念)과 신앙(信仰)과 소신(所信)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간다면 그는 ‘신실한 자’이다. 간혹, ‘배신의 누명’을 쓸 수도 있지만, 배신(背信)은 다분히 자신의 신념과 상관있다.
윤원형이 배신자(背信者)이다. 왜냐면, 박태수는 분명 윤원형을 위해서 명나라 사신을 죽인 것인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박태수를 죽이도록 명령했으니, 이렇게 ‘신의’(信義)가 없는 인물은 ‘국가의 역적’이다. 이런 인물은 권력의 거머리와 같아서, 왕까지 자기 마음대로 요리하는 족속이다. 인종이 8개월만에 죽은 것도 이런 권력자 때문에 생긴 사건이다.
옥녀가 체탐인의 진로를 선택한 것은 그녀의 멘토가 체탐인의 직업을 가진 영향이 크다. 진로는 항상 멘토를 따라서 결정된다. 그러나, 박태수가 죽고, 옥녀는 스스로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상실(喪失)에 빠진다. 체탐인으로서 진로를 결정하고, 멘토와 함께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수 있다고 믿었는데, 멘토가 죽었으니 그 고통과 통증은 지하감옥에 갇힌 것 이상이다. 진로(進路)는 이런 것이다.
그 누구도 없는 곳에서 자신이 살아갈 인생의 길을 결정하는 것이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스승도 모두 ‘참고서로서’ 의미가 있을 뿐, 자신의 인생길은 반드시 자신이 결정하고, 그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한다. 옥녀는 비로소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깊게 탐구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 같다. 내가 나를 찾는 여정은 오직 ‘스스로’ ‘고독의 좁은 길’을 따라 걸어야한다.
옥녀는 의리가 있다. 신의가 있다. 윤원형보다 더 악랄하게 나쁜 놈은 포도대장 강선호다. 강선호는 자신을 믿은 옥녀를 배신했고, 게다가 자신의 눈앞에서 스승인 박태수의 죽음을 쳐다만 봤다. 침묵은 공범이다. 반면, 옥녀는 자신의 정체를 안 ‘윤태원’이 죽지 않도록 해준다. 박태수가 칼에 맞고 쓰러져 있자, 스승의 죽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강선호 앞에서도 박태수의 죽음은 윤원형의 짓이라고 반박한다. 강선호와 옥녀는 전혀 다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사자성어에 ‘당랑박선’(螳螂搏蟬)이란 말이 있다. ‘당랑’은 사마귀를 말한다. 박선(搏蟬)은 매미를 잡다는 뜻이다. 당랑박선은 ‘매미를 잡는 사마귀’를 의미하는데, 그 뜻이 의미심장하다.
옛날 장자가 사냥을 나섰는데, 까치 한 마리가 낮게 날아서 밤나무에 앉았다. 활을 쏘면서 생각하길 “저 까치는 자유로운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저렇게 낮게 날아서 나의 화살을 피하지 못한 것일까?”. 장자가 자세히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까치가 장자를 못 본 이유는 사마귀 때문이다. 까치는 사마귀를 잡아먹으려고 밤나무 가지에 낮게 내려앉았고, 사마귀는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응시하고 있었다. 장자는 “자기의 유익만을 쳐다보다가 정작 자신이 위험에 빠진 것을 모르고 살고 있구나”라고 깨닫고, 그 순간 화살을 버리고 급히 도망쳤다. 그러나, 장자는 밤나무 숲을 지키던 사람한테 붙잡혀서 몰매를 맞았다.
박태수는 명나라 사신을 암살하는 것에만 신경썼지, 정작 자신을 죽이려는 측근을 신경쓰지 못하였다. 문정왕후로부터 자유를 약속받고서 체탐인으로서 임무를 받았다면, 20년만에 얻은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라도 문정왕후의 남동생인 ‘윤원형’의 음모를 대비했어야 했다. 당랑박선은 ‘뒤를 조심하라’는 말과 같다. 매미 뒤에 사마귀, 사마귀 뒤에 까치, 까치 뒤에 사냥꾼, 사냥꾼 뒤에 밭 주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