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 옥중화(주연 진세연, 고수]=사람 이름은 태어난 배경과 미래의 희망이 담겨있다. 옥녀(玉女)는 옥(獄)에서 태어나서 그 발음이 ‘옥’이지만, 그 의미로는 ‘구슬처럼 둥그렇고 왕과 같은 고귀한 신분’으로 살라고 해서 ‘옥녀’(玉女)라고 한문으로 표기한다. 옥은 귀금속(貴金屬) 중에서 귀한 보물이듯 사람속에서 귀한 인재가 되어라는 의미다.
총 50부작으로 진행되는 옥녀는 9회에서 옥녀가 자신의 스승 박태수처럼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전체 50부작에서 1/5의 사건전개가 진행됐고,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역사사극’의 새로운 드라마임에 틀림없다. 역사는 왕들의 기록이 아니라, 왕을 중심으로 권력의 움직임,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는 백성들이 함께 서술하는 기록물이라는 의미도 있는 듯 하다.
우리의 시대, 과학이 매우 발달한 지금의 시대는 ‘녹음기술’과 ‘영상기술’이 발달하다보니 증거의 효력이 매우 뚜렷하다. 녹취를 하거나, 혹은 영상을 촬영해서 증거로 삼게 되면, 어떤 사건의 진실을 증명하는 효력이 발휘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과학이 발달하지 못하여서 ‘증인’의 증거능력, 목격자의 진술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은 목격자들의 입맞춤을 의미한다. 3사람이 호랑이를 만든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은 호랑이’여도, 만약 3사람이 ‘호랑이가 존재한다’고 말하면 없던 호랑이도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의미다. 이처럼 증인의 증언은 매우 중요하다. 박태수 체탐인이 죽었고, 함께 있던 2사람은 임무수행 도중에 죽었다고 했으나, 나머지 한사람 즉, 옥녀는 ‘박태수의 죽음’에 대해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윤원형의 계획된 음모’로 인해 죽은 것이다.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남동생, 명종의 통치하는 시기에 문정왕후가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 윤원형도 문정왕후를 배경으로 해서 권력이 형성되어 있으니, 문정왕후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었던 박태수를 암살한 윤원형의 권력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50회 역사 사극에서 이제 1/5이 지났으므로, 아마도 본격적으로 ‘체탐인’의 활약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옥녀가 체탐인으로 활동한 것은 딱 1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토정 이지함과 친분도 아직 크게 사용되지 않았다. 체탐인으로서 1번 활동했다가 그것으로 정치적 도구로 전락되었으니, 본인으로서는 너무 억울한 면이 많을 것이다. 옥중화 10회에서는 문정왕후와 옥녀가 직접 만나게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건전개가 펼쳐질 것 같다.
# 전옥서 소장 정대식
전옥서 소장 정대식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옥녀의 행방을 팔아먹는 장면이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졌다. 체탐인 강선호와 거의 비슷한 이미지다. 강선호 체탐인도 자신의 권력유지(본인은 체탐인으로서 명예라고 생각하겠지만)를 위해서 옥녀를 죽이도록 침묵으로 동조했다. 현실 가운데 강선호와 정대식과 같은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참으로 썩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관계일 것 같다.
옥녀는 정대식 전옥서 소장에게 상당히 크고 유익한 일을 했었다. 어린 시절에 윤원형 대감과 관계가 보다 좋아지도록 한 것도 옥녀였다. 그런데 이제 옥녀가 지하감옥에 갇혀있고, 그러한 정보가 윤원형 대감에게 유익하다고 판단되니까,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서 양심은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으니, 권력의 노예와 같은 인물인 것이다.
드라마니까, 윤태원(윤원형의 첩의 아들)이 정대식이 윤원형을 만나서 옥녀의 위치를 말하고, 죽이도록 지시하는 장면을 듣게 되는데, 현실가운데 이런 우연의 일치가 가능할 수 있을까?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로 인해서 옥녀가 거의 1분의 차이로 탈출한 것이고, 현실이었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옥녀는 이제 자신이 왜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는지 스스로 의문을 풀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위치는 비밀의 자물쇠로 닫힌 지하감옥 그 자체이므로.
# 정치의 거대한 소용돌이
박태수는 명나라 사신을 암살한 애국자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를 위해서 적을 암살한 1등 공신인데, 목적을 수행하자마자 같은 체탐인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이러한 조직은 ‘가장 비열하고 냉혈한’의 탐욕이 아닐까싶다. 죽이는 자는 언젠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죽임의 칼이 어디서 언제 오는지 모를 뿐이다. 옥녀는 그 비밀을 알게 된 것이고,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명종시대의 정치가 얼마나 혼돈스럽고, 배신과 음모가 팽팽했는지 보여주는 역사사극이다. 지금의 정치도 옥녀의 시대와 흡사한 듯 하다.
정난정은 윤태원 대감의 첩이다. 정난정은 권모술수에 능수능란한 여자인데, 조만간 본부인을 독(毒)으로 죽이고, 본인이 본부인에 오르게 된다. 역사사극에서 가장 무섭고 위험하고, 간사한 인물로 ‘정난정’이 꼽힌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모든 도구를 동원했던 인물이다.
정난정은 자신의 사위가 될 성시헌 포도청 종사관에게 ‘공재명 상단 압수수색’을 부탁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검찰의 기업 압수수색같은 것이다. 검찰이 특정 업체를 압수수색하고, 국세청에서 세무감사를 실시하면 ‘털어서 먼지’가 풀풀 날리게 된다.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이 편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돈을 벌게 되는데, 검찰에서 작정하고 덤비면 기업은 그대로 망하게 된다.
정치적 도구로 검찰이 활용되듯, 정난정이 자신의 친분을 활용해서 성지헌 포도청 종사관을 움직여 불시 압수수색을 한 것이다. ‘금지거래 품목’을 적발한 것인데, 화약과 물소뿔이 압수수색으로 발각된다. 조선시대의 공권력은 지금보다 더 강력한 것 같다. 지금은 검찰도 압수수색 영장은 명확한 증거가 확보된 후에야 ‘압수수색 영장’이 떨어지는데, 조선시대는 그러한 절차없이 포도청 군인들을 동원해서 압수수색을 했으니, 포도청과 의금부는 지금보다 더 정치의 도구로 활용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