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겨울엔 시베리아 바람이 분다. 대지의 건조한 북풍이 한반도를 휘감으면 사방은 숨이 마른다. 건조한 바람은 인간의 마음까지도 차갑게 쓸어버린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배경은 저 먼 대륙의 시베리아 바람이 휩쓸고간 현대문명의 사랑 실종의 바닥과 같다. 앞을 못보듯, 빛의 양심을 못보는 지금 우리의 모습, 권력의 지팡이로 살아가는 우리네 그런 인생들…… 과연 나는 앞을 보며 사나?
가짜 오빠 행세를 하다보니 점점 스스로 본모습을 찾아가다가도 지킬과 하이드처럼 다시 악의 근성이 치솟아 오는 오수, 자신은 결코 오수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왕비서에게 “당신은 엄마가 아니예요”라고 했듯이 그러하다. 아무리 착하고, 친절해도 자신은 진짜 오수가 될 수 없다. 흉터도, 주민증도, 추억도, 솜사탕도, 그 모든 것은 단지 지식을 맞출 뿐 함께 했던 그 세월의 시간은 나눌 수 없다. 시간은 향기와 같다.
*** 오늘 우리 집에 들어가지 말까?
이 말에 오수는 오영과 함께 바닷가로 놀러가기로 결심한다. 하룻밤 함께 보내기로, 남매끼리 함께 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렇게 함께 호텔을 잡고, 왕비서에게 전화가 와도 “남매의 일은 남매가 알아서 해요”라고 오히려 반박하고, 약혼자도 전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다. 오빠로서, 여동생과 함께 못했던 지난 세월을 대화로 나누면서…. 아뿔싸 그런데 그 날이 오수의 첫사랑 희주의 제삿날이었다.
정말로 서로 함께 편온한 시간을 보내고 아침을 출발하는 그 시간에 전화가 걸려와서 알게 됐다. 희주 제삿날을 반드시 갔어야 했다. 그 어떤 날보다 희주의 제삿날은 반드시 챙겼어야 했다. 왜냐면 오수의 아이를 가졌던 희주는 오수 때문에 죽었기 때문이다. 너무 어린 19살의 나이에 아버지가 된다는 그 생각이 너무나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무철은 당시 희주를 사랑했었는데, 오수가 희주를 버린 그 사건 때문에 둘은 원수가 된 것이다.
드라마의 극적인 반전은 참으로 절묘한 것 같다.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썰려가는 그런 묘미는 걷잡을 수 없는 긴장감을 팽팽하게 한다. 축구에서도 서로 아슬아슬하게 이기고 지면서 엎치락 뒤치락 해야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긴박감이 있어야 경기가 재밌듯 그렇다. 오수의 가짜 행세는 정말로 아슬아슬한 것 같다.
희주의 산속 무덤터에 무철과 오수가 서로 만났다. 서로 주먹질이다. 무철에게 오수는 전혀 상대가 안된다. 19살 때 자신의 아이를 가진 희주를 버리고 달아났던 오수의 과거는 영원히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꼬리표처럼 영원히 버릴 수 없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다. 무철이 ‘독약 알약’을 꺼낸다.
“누가 죽든, 이것은 먹으면 그냥 죽는 약이야. 가짜 동생이 먹게 하든, 아니면 너가 먹든 그것은 너가 알아서 결정해. 판단은 네 몫이야. 이 알약은 부검에도 전혀 걸리지 않고 심장발작으로 죽게 만들지”
오빠가 집에 오자, 오영은 오빠 때문에 즐거웠던 지난 밤과 갑자기 화냈던 것을 놓고서 따진다. “사과해. 21년동안 그렇게 나에게 화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오수는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사랑한 첫사랑의 죽음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해준다. 그때 오영은 일어나서 오수에게 다가가서 ‘머리위에’ 두 손을 얹고서 위로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의 표시다. 앞을 보는 오수는 사람을 죽이려고 알약을 꺼냈는데, 앞을 못 보는 오영은 오빠의 아픈 과거를 위로하려고 온 몸으로 머리를 감싸니…..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오수……. 자리로 돌아가는 오영의 발에 알약을 담은 병이 툭 걸리면서 ‘이게 뭐야’라고 묻자, ‘고통스런 사람이 먹으면 고통없이 편히 잠이 들 수 있는, 고통을 느끼지않게 만드는 부적같은 알약’이라고 둘러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