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friend’인 친구는 보통 ‘같은 나이 또래’를 말한다. 나이는 학교중심의 친구또래 집단을 형성하고, 거의 비슷한 지식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생각과 사고를 같게 된다. 친구집단은 같은 나이 혹은 동창(同窓)을 말한다. 같은 창문을 의미하는 동창이 친구를 의미한다.
친구(親舊)는 친할 친(親)과 오랠 구(舊)가 합쳐졌다. 오랠 구, 옛날 구(舊)는 절구통위에 새가 날아와서 놀고 있는 모습으로서, 절구통은 날마다 절구를 쪄야하는데, 얼마나 절구를 찌지 않았으면 새가 날아오겠는가? 옛날 구(舊)는 아주 오랜 세월을 의미한다. 친구(親舊)는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를 말한다.
친(親)은 설 립(立)과 나무 목(木)과 볼 견(見)이 합쳐졌다. ‘서있는 나무처럼 바라본다’는 뜻이다. 늘상 쳐다보는 그 나무를 의미한다. 옛날에는 마을에 반드시 큰 나무(木)가 존재했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의 행사가 열렸다. 마치 버스 정류장처럼 그 나무는 마을의 이정표였고, 랜드마크였다. 사람은 100년 살아도, 나무는 1000년 넘게 살기 때문에 오랫동안 서있는 나무는 친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무는 변함이 없다. 뿌리가 견고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또한 변화한다. 봄여름가을겨울로 진행되는 나무의 패션감각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유럽 파리가 패션감각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자연의 패션을 따라올 수 있을까? 단풍잎의 그 거대한 패션쇼를 파리가 흉내낼 수 있을까? 모델들이 아무리 레드 카펫을 거닐어도, 걷지 않고도 패션을 연출하는 신록의 아름다움은 우리를 싱그럽게 한다. 그렇게 나무는 변화에 변함없다.
친구도 그렇다. 진정한 친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호 믿음이 변함없다. 서로 의견이 같다고 친구인 것은 아니다. 서로가 의견이 달라도 오랜세월 서로 믿을 수 있는 끈끈한 신뢰성, 그리고 서로가 잘되길 바라는 든든한 후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의 뿌리가 되어주는 그러한 관계가 인맥이 되는 것, 절구통처럼 튼튼한 그런 관계가 친구가 아닐까?
심심할 때 만나서 대화하는 관계는 지인(知人)관계다. 친구관계는 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믿어주고, 후원하면서, 여름철 그늘이 되어주고 가을철 열매를 열어주면서, 절구통이 언제나 그 집안에 머물러 있듯이 오랜세월 함께 하는 관계인 것이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페이스북이 친구관계에 새로운 소셜을 일으키면서 우리들은 친구가 많아졌지만, 그만큼 친구가 없어졌다. 밴드는 동창들을 하나로 묶어줬지만, 그 안에는 동창이 없다. 동창에 대한 그 애틋한 그리움은 밴드가 없었을 때, 명절 때 만나면서 아련히 형성되는 것인데…… 그런 숙성의 관계가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쉽다.
오늘 방청소를 했다. 아침에 교회에 다녀와서, 주일말씀에 하나님은 깔끔하고 깨끗한데, 사는 집에 온다면 어쩌겠는가? 그런 말씀을 듣고서 집을 생각하니, 청소한 왼쪽과 덜 청소한 오른쪽이 생각났다. 결심했다. 가서 완전히 새롭게 하기로…. 나의 좌뇌는 주님을 생각하고, 우뇌는 세상을 생각하듯 어지러운 내 인생의 삶을 회개하면서…. 1시간 가량 청소했더니,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1달 전부터 서로 만나자고 했지만 만나지 못했던 어긋남이 청소가 끝나니까 전화가 울렸다. 웬지 기분이 좋았다.
자기를 꼭 빼 닮은 아들을 데리고서 오랜만에 본 친구의 얼굴은 변함없이 세상파도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아직 세상속에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은 많은 듯 얼굴이 고단해 보였으나 수평선을 향해 돛을 펼치는 선장처럼 희망을 가지고 있어서 보기에 좋았다. 야구사업이 올해는 뭔가 풀려지길 기대해보았다. 나에게 선물을 남기고 가서, 집으로 선물 보따리를 들고와서 생각해보니, 친구(親舊)란 오랜 세월(舊 )의 의미도 있고, 절구통처럼 고단한 시간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해서 넓어진 내 방의 한쪽에 친구의 선물을 올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