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문장으로 드라마가 시작한다. 시간여행을 가능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누구든지, 그것을 원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상상으로 가능하고, 그것을 전제하면, 사건은 새롭게 펼쳐진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이 실제로 실현된다. 시간여행자, 곧 앨리스다. 앨리스는 미래에서 과거로 여행하는 ‘여행관광회사’이다. 현실에서 보면,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다. 시간은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하다. 현재에서 미래로 갈 수 있고, 이미 지나온 과거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날 뿐이다. 반복된 사건은 과거의 미래형이지, 과거의 재반복은 아니다.
“우리는 시간 여행자다”
앨리스 1회를 보면서, 흡인력이 장난이 아니다. 내 집의 진공청소기 뺨친다. 그냥 빨아드린다. 나는 이미 앨리스 속이다. 마음은 진공상태, 작가의 이런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물론, 시간여행과 관련된 다른 많은 작품을 참고해서 새로운 작품을 창조했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허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전개가 얼마나 빠르면서 긴박한지, 스토리의 짜임새도 장난이 아니다. 이런 드라마는 “대박”이 날 것 같지만, 연기력이 그것을 뒷받침해줄까? 의문이다.
미래의 과학SF영화가 이제는 ‘예언서’와 연결된다. 1992년도 어떤 예언서로 연결되는데….. 어떤 과학자의 딸이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1P의 찢어진 마지막 페이지를 손에 움켜쥔다. 도대체, 그 책은 무엇을 예고하는가?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한다. 첫 장면에서 시청자를 사로잡아야한다. 간판이 중요하듯, 사건의 첫장면에서 사건의 전체를 보여주면서, 강하게 끌어당겨야한다. 앨리스가 꼭 그렇다.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을 소녀가 들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를 상징하는 책이기도 하다.
여자 주인공이 의문의 책, 계시록(예언서)를 손에 입수했는데, 호텔에서 다시 시간여행을 기다리다가 그 예언서를 몰래 꺼내본다. 그런데, 그 책에 자신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그러니까, 누군가 미래를 예언해서 쓴 것인데, 미래에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미래는 현실과 이렇게 연결되어서 ‘옷’이 만들어지는가? 현실은 미래의 설계도인가? 미래에서 온 그 여자는 과연 예언자들의 실제를 말하는 것일까? “비극은 그녀가 시간의 문을 열면서 시작되었다”는 그 문장을 보면서, 여자 주인공은 마음이 화들짝 놀란다. 몸안에 잉태한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결정해야하는가!! 그 아이를 지운다면, 모든 사건은 끝날 것이다. 책을 없애는 것은 자신의 몸속에 있는 생명을 지우는 것과 같다. 단순히 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은 곧 책이다.
“내 것보다 작지만, 내 아이의 심장소리, 내 속에서 살아 숨쉬는 작은 생명의 소리!!”
이제, 미래와 현재는 ‘엄마’를 통해 한 생명의 탄생을 예고한다. 생명은 생명으로 이어지면서 현실은 미래로, 과거는 다시 현실로 만난다. 현실은 과거와 미래가 모두 만나는 연결지점이며, 생명은 그 시간의 운명을 수레바퀴로 돌려야한다. 시간의 톱니바퀴처럼 사람은 사람으로 맞물린다. 선택은 버림의 갈림길이다. 미래의 그 현재로 돌아가지 않음으로 과거의 현재에 남으려는 여자 주인공의 선택으로 한 아이는 존재의 생명을 이룬다. 미래는 ‘과거의 존재’를 결정할 수 없다. 이 드라마는 미래가 지금 현재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얼마나 섬찟한가? 존재하는 ‘나’는 어느날 ‘부존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엄마는 아이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인가? 탄생의 배경인가? 엄마는 아이를 낳음으로 그 아이의 미래까지 모두 낳는 것이니, 엄마는 충분히 아이의 미래를 상징한다.
감정영역과 지능영역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차이가 발생하면서, 남자 아이는 지능이 지나치게 발달한다. 이것은 인간사회에서 이상한 현상을 야기한다. 감정을 공유할 수 없음으로 자신이 해야할 업무능력은 극대화되는데, 감정소모전을 펼치지 않으면서, 냉정한 인간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냉정하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인가? 남들의 일에 지나치게 연결되면서, 쓸데없는 일들에 인생이 허비된다면 그것은 무익한 일이다. 엄마는 남자아이의 감정상태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옥상의 자살사건이 발생한다. 남자아이는 여학생의 자살을 만류했던 것인데, 오히려 오해를 받는다. 이런 사건에 대해서도 드라마는 엄마의 헌신으로 풀려날 수 있게 하는데, 드라마가 억지는 아니다. 신경을 많이 썼다는 흔적이 묻어난다.
드라마가 1회에서 사건의 인물을 정확히 묘사한다면, 성공한 것이다. 자칫, 인물을 묘사하다가 사건을 빠뜨리면, 지루한 줄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드라마는 흡인력이 없어서 실패한다. 첫 도입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고 용두사미가 되면 안되겠지만… 이 드라마는 시작도 좋고, 이후 사건전개가 ‘시간여행’의 초점을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미래의 ‘과거여행관광회사’ 앨리스가 너무 긴박감도 없고, 가공의 회사로만 보여지는 것이 이상하다. 미래사회에서 모든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할 것 같은데…. 게다가 과거로 돌아오는 그 인물이 어느정도의 여행경비를 지급하는지도 나와있지 않다.
윤태이(김희선)는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에 돌아온 그녀는 박선영으로 살아간다. 이때, 미래의 윤태이와 과거의 윤태이는 서로 독립적이다. 과거의 그 인물이 있는데, 미래에서 실제로 과거를 찾아간다. 만약 그렇다면, 미래의 자아가 과거의 자아를 없앤다면, 어찌 되는가? 미래 사회가 없어지므로, 이러한 시간적 충돌상황은 현실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드라마니까, 그냥 봐야한다. 모든 것을 상세하게 설명하면, 이야기는 전개될 수 없다. 모순 덩어리이므로….. 박선영이 아들 박진겸에게 말한다. “언젠가 다시 엄마를 보거든 절대로 아는 척 하지 마라!!” 미래에서 과거로 여행한 시간여행자로서 말이다. (시간여행자는 예언자로서 환원될 수도 있다.)
“목표가 뭐야?”
“경찰대요!!”
박진겸이 어머니의 죽음을 놓고 그 충격이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경찰간부는 고등학생인 박진겸을 앞에 두고서 사이다 컵에 소주를 한잔 들이킨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니, 대뜸 “경찰대”라는 말이 나오고, 순식간에 박진겸은 경찰대에 합격하고 고된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경찰로서 현장에 파견된다. 앨리스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어떤 사건을 빨리 전개할 때는 순식간에, 반면 자세히 설명할 때는 자질구레한 것까지 집중묘사한다.
시간여행자는 SF 공상소설로서 널리 상식이다. SBS 앨리스는 많이 새롭다. 2050년에서 과학시루의 발달로 시간여행이 가능한데, 1992년에 어떤 예언서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한 남자의 탄생을 예고한다. 엄마의 아들, 웜홀을 통해 임신한 여자가 통과하면서 모든 사건은 발생했다. 임신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SF영화도 결국 ‘엄마’로 사람과 연결된다. 과연, 과거로 돌아가는 것, 시간의 세계가 중간경계가 없이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 현실의 벽이 무너지면, 과거와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과거에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미래에서 직접 찾아가서 죽일 수도 있을텐데…. 슬픈 비극은 여기서 비롯될 것이다. (박진겸에게는 감정의 폭발과 함께 시간의 일시정지 능력이 있다.)
◆ 기억속 엄마 VS 현실의 엄마
멈췄던 시간은 ‘눈물 한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다시 흐른다. 눈물은 멈춘 시간을 가게 하는 능력이 있다. 슬픔은 곧 봄이다. “쿵!!” 트럭에 교통사고가 나고, 엄마의 모습은 사라진다. 여자친구는 난리가 났다. 박진겸이 수사하는 유아실종사건은 그냥 쉽게 풀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자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었고, 그 엄마는 해외출장중이었다. 엄마가 두 명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미래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가 서로 충돌한다면, 누가 진짜인가? 과거가 죽으면, 미래도 없을텐데….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를 보려고 미래에서 온 그 여자는 “미국에 가면 안돼!”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떤 기괴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공통점이 있다. 드론이다. 뭔가를 하늘에서 목격했는데, 그때마다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난다. 시간의 문이 열리면서 복수를 꿈꾸는 자의 손은 피로 얼룩진다. 언제나 과학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문제였다. 사람의 마음이 발달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비하지 않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상대를 죽여야 자신이 산다는 그런 생각이 가득하면 과학기술은 ‘칼’로 변질된다. 사람이 먼저다. 과거로 여행하는 앨리스 회사에서 고객이 살인을 저질렀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긴박감이 없다. 이 드라마의 맹점은 여기에 있다. 이 부분이 좀 더 보완된다면, 미래사회가 어떻게 현실과 연결되는지, 그 부분을 보여주는데 실패하였다. 미래에서 현실로 오는 것만 생각했지, 미래사회는 공상상태에만 두고 있다. 그 미래사회도 그 시대에는 현실일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