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로 결재하면서, 1일 외상이 시작됐다. 외상은 묘한 유대감을 준다. 집앞 이모네 식당이 특히 그렇다. 카드결재 수수료 때문에 나는 가능하면 현금으로 결재한다. 어느 저녁에 현금이 없어서 카드를 내밀었더니, 식당 아줌마는 “내일 점심때 같이 계산해”라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오늘 밥값은 오늘 계산해야죠?”라고 되물었더니, 그녀는 “오늘 밥값도 내일 같이 하면 돼지, 뭘 그래?”라고 말했다. 그때부터다. 나는 점심을 계속 이모네 식당에서 먹는다. 점심때 어제 저녁밥값을 같이 계산하면 12000원이다. 그리고, 저녁은 공짜로 먹는다. 내일이면 다시 12000원을 카드로 결재한다.
점심때 딸이 서빙을 한다. 그녀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그림을 식당에 걸어놨는데, 인물화가 매력적이다. 반추상으로 그린 것 같은데, 내가 “저것, 누가 그렸어요”라고 물었더니, 그때 딸이 얼굴을 수줍어하면서, “저요”라고 말했다. 그때 알았다. 그녀가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는 것을. 그렇다고 그녀가 어머니를 무작정 돕기 위해 서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식당 아줌마는 3시간 알바를 점심때만 써서 좋고, 딸은 하루에 3만원을 벌 수 있어서 좋고, 서로 계산이 맞은 것이다.
저녁에는 한산하다. 거의 나 혼자 밥을 먹는다. 파리를 날린다는 속담이 있는데, 속담과 실제는 항상 같이 발생한다. 속담의 출처가 실제인 것은 ‘이모네 식당’에 해당한다. 파리들이 많이 날아다닌다. 잡는다고 파리가 멸종될 수는 없다. 코로나도 잡는다고 잡히지 않듯이, 파리들이 그렇다. 잡을수록 그 숫자는 증가한다. 어디서 데려오는 것일까? 오라는 손님은 오지 않고, 오지 말라는 파리는 몰려드니, 이모네 식당은 ‘맛’이 없다면, 나도 가지 않겠다. 맛은 파리떼도 못 말린다.
나보다 먼저 식사를 하고 있는 어떤 할아버지는 참이슬 1병을 벌써 마셨다. 된장찌개와 계란 후라이에 술병을 기운다. 내가 들어가니, 나를 보고 빙긋 웃는다. 이빨은 앞니가 모두 빠졌고, 좌측 밑에 큰 이빨만 남아있다. 이빨이 없어도 밥은 먹는다. 넘기면, 소화가 되는 법이다. 나도 이빨이 별로 좋지 않아서,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하고, 입에서 대충 넘기면, 뒤로 거의 나온다. 인체는 신비하고, 그 능력이 탁월하다.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나오듯, 음식은 넘기면 뒤로 나온다. 절대법칙이다. 나의 믿음은 이빨 1개를 가진 어떤 할아버지를 통해서도 재확인된다.
“여기, 카드, 5만원 긁어, 외상값 4만원 포함해서”
그 할아버지는 계산이 정확했다. 술을 마셨지만, 정신은 명료했다. 수첩에 적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외상값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저녁에 먹은 것을 다음날 점심때 계산한다. 전날의 외상값을 머리에 기록해서 기억하는 편인데, 그 할아버지는 4번의 외상값을 기억하고서 한꺼번에 계산한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그 할아버지를 쳐다봤더니, 내 생각을 알았는지, 어떤지, “아까, 수첩 봤어”라고 말한다.
“여기에 자주 오시나봐요?”
“그럼, 여기 단골이지, 맛있으니까. 맛이 없으면 안오지. 값도 싸고, 맛있고, 일석이조!”
내가 말을 걸었더니, 분위기가 금방 좋아진다. 나는 음식을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비빔밥이 나왔다. ‘오늘의 식단’이 나의 주문 메뉴다. 나는 ‘오늘의 식단’으로 항상 같은 음식을 주문하는데, ‘오늘의 식단’이 주인 아줌마가 날마다 바꾸니까, 식사 메뉴가 날마다 달라진다. 다음날 무엇을 먹을지, 나도 식당 아줌마도 모른다. 식당 아줌마의 다음날 기분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서, 뭘 해야겠다고 생각이 되면, 그때 오늘의 식단 메뉴가 결정된다. 그래서 내일 음식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점심메뉴와 저녁메뉴도 달라질 때가 있다. 점심때는 가자미가 나왔는데, 생선구이를 또 먹을수 있을까싶어서 갔다가 비빔밥이 나와서, 그것을 받아드려야 했다. 식당 아줌마는 고추장을 많이 넣었고, 나는 밥을 반공기 더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밥의 매운 맛이 줄어들었다.
“목포는 항구다, 거기 진짜 나뻐. 거기는 내가 안가!”
할아버지가 갑자기 ‘목포는 항구다’ 식당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 목포는 항구다, 식당 말하는 것이죠?”라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맞아. 거기”라고 했다. 목포는 항구다 식당 아줌마가 그 할아버지가 지나가는데, “4만원 외상값이 있어요”라고 해서, 카드를 줘서 4만원을 갚았는데, 외상값이 적힌 날짜를 확인하고 은행에서 확인했더니, 이미 계산이 됐던 것이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니까, 기억이 없는 것을 알고서 수첩에다가 기록했다가 덜미가 잡힌 것이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먹고 떨어져라”는 마음으로 거기는 근처에도 안간다면서, 혀를 찼다. 말을 들어보니, 목포는 항구다 식당이 정말 나빴다.
“거기 식당 아줌마가 그렇게 보이진 않던데, 그렇게 바가지를 씌우나요?”
“바가지가 뭐야. 20년 넘게 그렇게 당했다는 생각을 하니, 계산이 안돼”
우리의 대화는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 TV소리가 다시 끼어들었다가, 그렇게 흘러갔다. ‘목포는 항구다’와 ‘목포행 포장마차’가 다른 식당인 것은 밥을 모두 먹을 즈음 알게 됐다. 할아버지가 말한 바가지 식당과 내가 아는 식당은 달랐다. ‘목포행 포장마차’ 식당 아줌마를 내가 오해했다. 주먹밥을 맛있게 요리해서 주는데, 누군가의 말을 듣고,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서 사실과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집에 왔다. 외상으로 먹은 비빔밥,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