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대교를 두 발로 건넜다. 해병대 시절로 되돌아갔다. 나의 ‘나홀로 여행하기’는 이렇게 야물지게 시작했다. 강화도의 석모도에서 그 강풍을 만나기 전까지 내 마음은 이미 서해안에서 남해안으로, 그리고 동해안의 포항과 강릉까지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였다. 밀물과 썰물처럼 사람의 마음은 초침처럼 금방 바뀐다. 파도같다. 어쩌랴, 추워서 서울로 왔다. 아들을 한 명 둔 내 내 친구가 말하길, “차에서 자면, 입 돌아가요”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차량용 각종 장비에 관한 정보를 보내줬다.
<사진1 – 석모도 해변가>
그녀가 또 말하길, “어차피 나홀로 여행을 하려면, 책을 책답게 써요! 조약돌처럼 작게 쓰지 말고, 묵직하게 두툼하게 써봐요. 원고가 나오면, 내가 멋진 출판사와 중매할께요!”라고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는 뉴턴의 작용반작용 법칙처럼 ‘발끈의 반발력’이 심리적으로 작동하는데, 집에 와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는 전자책을 너무 많이 출간한다. 그것들이 하나로 모아져서 ‘나홀로 여행하기’라는 책이 1권만 제작하는 것도 좋은데, 하루에 1권을 내고 있으니….. 그래서 ‘책의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오직 1권의 책을 집필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충고는 언제나 보약과 같아서 ‘습관의 병’을 치료한다.
<남편과 싸우고, 자연의 바람을 쐬고 싶은 여인들이여! 아내의 바가지가 너무 피곤해서 바다 바람을 마시고 싶은 남자들이여!그냥, 차를 몰고, 동쪽이든 서쪽이든 가세요! 나홀로 여행하기는 집을 떠나면서 시작해요! 떠나면, 결국 집이 그리워지고, 아내가 보고 싶고, 가족이 생각납니다. 그게 여행의 참 묘미입니다.> – 나의 소신발언
홀로 사는 내게 집은 감옥과 같아서, 아주 멀리 떠나지 않고서는 집이 괴롭다. 차라리 지구가 마당이고, 차가 집이고, 앞좌석이 나의 침대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나의 고정관념은 ‘앞좌석’을 침대로 삼은 것이다. 뒷좌석을 침대로 삼겠다는 그 발상을 하지 못했다. 뉴턴은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통해 ‘만유인력’을 발견했던가? 나는 친구의 충고가 망치처럼 떨어졌고, 그로인해 나의 침대 위치가 바뀌었다. 앞에서 뒤로~~
이것은 순전히 피타고라스 정리를 소형차량에 응용한 것이다. 베르나는 뒷좌석이 90cm와 135cm이다. 나는 165cm다. 30cm가 부족하니, 발목의 길이가 접혀야 가능하다. 쪼그려서 잠을 잘 수 있을까? 칼잠을 자더라도 어느 정도 길이는 나와야한다. 그런데, 피타고라스 정리는 ‘대각선’의 위대함을 선언했다. 수학공식을 알 필요도 없다. 그냥 방바닥에 90cm와 165cm를 줄자로 표시를 하고, 대각선 길이를 줄자로 재면 그만이다. 155cm가 나온다. 그러므로 10cm만 부족하니, 살짝 웅크리면 뒷좌석이 침대가 된다. 오! 이 기쁨! 누가 말했던가? 침대는 과학이라고, 나는 다시 말한다. “차량용 침대는 수학이다!”
<사진2 – 베르나 뒷좌석 사진>
<사진3 – 방바닥 표시 및 줄자 사진>
내 친구는 ▲에어매트 ▲차량용 바닥매트 ▲차량용 가습기 ▲차량용 무시동 히터 5kw ▲USB 온열침낭 ▲거위털 군용 침낭 ▲고속충전 대용량 보조배터리 6만mAh를 보내왔다. 이 중에서 에어매트와 USB 온열침낭은 지웠다. 왜냐면, 에어매트는 바람을 넣는데 엄청 힘들다. 헬륨풍선에 바람을 넣는 것보다 힘들다. 매일 저녁에 에어매트에 바람 넣다가 여행이 피곤해질 것을 생각하니…. USB 온열침낭은 정말로 따뜻해 보였으나, 아무래도 전기용품은 피를 마르게 할 수 있으니… 이것도 지웠다. 차량용 바닥매트와 차량용 가습기와 차량용 무시동 히터와 거위털 군용침낭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왕십리에 있는 다이소와 동대문의 홈플러스를 방문해 물건을 물색해야겠다.
여행은 뭘까? 책은 뭘까? 인생은 뭘까? 묵직한 바위처럼 질문이 떨어졌다. 질문은 바위같다. 내게는 ‘돌을 줍는 습관’이 돌처럼 박혀 있었다. 깊게 박힌 그 습관이 최근에 바뀌었다. 강화도에서, 문경에서, 여수에서, 하동에서 주웠던 돌들이 집에 제법 쌓였는데, 오늘 95%를 버렸다. 돌은 여행의 방해꾼이다. 팔뚝만한 돌을 발견하면, 차에 태웠을 때 기름값이 장난이 아니다. 연비감소의 주범이 내게는 ‘돌’이다. 차라리 사람을 태우면, 고맙다는 인사라도 들을 것인데… 돌은 작아도 중량은 고릴라다.
습관은 연쇄적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리에 고리를 물면서 습관은 인생을 족쇄처럼 묶는다. 좋은 습관은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사람을 빛나게 하지만, 나쁜 습관은 발목의 전자팔찌같다. 습관이 느티나무의 뿌리처럼 마음속에 깊게 박히면, 뿌리가 깊은 습관은 쉽게 뽑히지 않는다. 습관이 그 사람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돌줍는 습관을 이번에 잘 다스려서, ‘수석의 눈’을 뜨고, 그것을 조절했다. 기간은 3개월 걸렸다.
습관을 없애려면, 습관의 돌을 쪼개야한다. 가령, 나는 돌을 주워서 집에 가져오는 습관의 중독에 걸렸다. 처음엔 작은 씨앗이었다. 무심코 피운 담배 한모금이 결국 하루에 한갑을 피우는 골초로 만들듯, 습관은 씨앗에서 시작해 나무가 된다. 뿌리가 깊어지기 전에 나쁜 습관은 독버섯을 제거하듯 없애는 것이 상책이다. 나의 경우, 세숫대야가 큰 역할을 했다. 돌을 보면 나는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 느낌으로 차에 싣고 집에서 세숫대야로 씻었다. 세숫대야에 씻으면, 그것은 돌이 집에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해변가에서, 길가에서 돌을 줍자마자 그것을 세숫대야에 올려놓고 씻었다. 씻고 보니, 모양이 아주 그럴싸하다. 정말 멋있다. 그것을 감상하고, 나는 돌을 다시 땅으로 보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라. 나의 이런 행동을 내가 보면서 매우 의아했다. 왜냐면 돌을 주웠다가 그냥 버리니까, 그럴 것이면 왜 주울까라는 생각도 했다. 줍는 이유는 심장이 뛰니까, 버리는 이유는 심장이 고요하니까, 그 사이에 세숫대야가 있었다. 세숫대야가 습관의 돌을 반으로 쪼갠 것이다.
돌을 줍는 것이나 옷을 사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쇼핑중독에 걸리면, 가서 무조건 사야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그것을 입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옷을 살 때 무조건 싼 것을 사는 것이 좋다. 비싼 옷을 살 경우, 한 달 생활비가 모두 사용되니까, 싸게 사서 처분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가 옷을 사는 자신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고쳐야한다. 쇼핑중독의 습관을 쪼개려면, 친구와 함께 쇼핑을 하는 것이 좋다. 단, 옷을 사길 싫어하는 친구를 데려가야한다.
글을 마쳐야겠다. 캠핑을 떠날 장비를 구입하기 위하여, 여기서 우선 끊어야겠다. 사람들은 여행을 ‘소풍’ 정도로 생각하는데, 나홀로 떠나는 캠핑은 소풍이 아니다. 군인의 행군이요, 달팽이의 거주지 이사요, 도시와 도시를 옮겨가는 위대한 탐험이다. 시간의 피자 24조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 과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여행은 자신을 재발견하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신비한 일이 내게 일어날 것이니, 이 책은 여행을 떠나려는 나그네에게 마음의 벗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