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장에 가려고 준비중이다. 한글교사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틈틈이 성경도 읽고, 서대서양 근처에서 살아갈 꿈을 꾼다. 그곳에 거주하는 분에게 들었던 아프리카인들의 새로운 교회운동이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됐다. 그곳은 백인들이 교회를 세웠는데, 3년전 즈음 교회에 다니던 흑인이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교회 문을 두드렸으나 차갑운 냉대를 받았다고 한다. 교회 담임목사는 “교회 돈은 하나님의 돈이니, 평신도의 병원비로 절대 사용할 수 없고, 교회를 짓는 곳에 사용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말라리아에 걸린 그 흑인은 돈이 없어서 죽었다. 국립병원에서 말라리아 주사를 맞았으면 충분히 살았을텐데, 대략 10만원 정도가 없어서 죽은 것이다. 참 안타깝다. 그 사건이 흑인들의 입을 타고 아비장 전체에 퍼졌고, 그때부터 흑인들은 가정교회 운동을 시작하면서, “입으로 사랑을 말하면서 행실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백인들이 교회건물을 세워놓고, 흑인들과 함께 따뜻한 식사도 하지 않으면서, 헌금만 바치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진리가 아니다. 흑인들끼리 모인 교회는 건물이 없고, 가정과 가정이 서로 돌아다니면서 집들이 교회로 운영된다. 목회자는 전체 리더로 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금 한가한 사람이 맡아서 하고, 특별히 사례비도 받지 않는다. 만약 성도의 집에 선반이 고장나면, 성도들끼리 서로 돕고, 집들이 가정예배를 드리니까 성도들끼리 애로사항도 알면서 서로 도울 수 있게 된다. 가정과 가정이 서로 연합하는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초대교회가 이런 시스템이었다. 베드로가 3천명을 전도했다고 했는데, 과연 3천명이 어디서 모였을까?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일 수 없었다. 그곳은 대제사장의 교회였기때문이다. 3천명의 신도들은 집에서 각각 모임을 가졌으니, 어찌보면 300명씩, 혹은 100명씩 서로 소그룹 공동체를 형성해서 모였던 것이다. 본래 교회는 목회자가 없었다. 목회자는 섬기는 종으로 노예와 같았다. 예수님이 요구한 것이 그 수준이다. 그런데 교회가 313년에 로마제국의 인정을 받으면서 계급화가 된 것이다. 교황은 점점 권력이 높아지더니 급기야 황제보다 높은 위치가 되고, 결국에는 예수님보다 높아졌다. 교황은 예수님 위에 있다. 그래서 교황은 면죄부를 판매한 것이다. 루터는 그런 교황을 향해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루터와 캘빈과 쯔빙글리가 각각 종교혁명을 일으켰는데, 쯔빙글리를 통해 파생된 교회가 스위스 형제단이고, 재세례파인데, 그들은 성직자 제도까지 없앴다. 평신도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성경을 목회자로 보고 서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 만약 설교자가 필요하면, 평신도끼리 투표를 해서 임시직으로 목회자를 선출하기도 했는데, 재세례파는 초대교회 원형을 가진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