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는 노(老)와 자(子)의 합성이다. 자식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습이며, 부모님을 업어서 효도하는 모습이다. 부모님이 자식을 업어서 키웠으니, 이제 늙은 부모님을 자식이 업어서 키우는게 ‘사람의 도리’인 것이다. 자식이 노인을 업는다는 것은 ‘존경과 공경’의 상징이다.
요즘의 효(孝)는 HYO라고 불린다. 순우리말을 영어로 쓴 ‘HYO’는 영어 이니셜로서 Harmony Young And Old이다. 젊은 청년과 노인세대의 화목이 바로 효이다. 이제 효는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효가 아니다. 효는 쌍방향 효인 것이다. 노인을 업고 있는 자식들은 정말로 고된 노동의 댓가를 지불했을 것 같다. 요즘은 자식들이 고통을 참지 않고 오히려 부모들을 기쁘게할 수 있는 각종 건강의료 시스템으로 보답한다. 건강 100세 초고령화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효(孝)는 자식과 부모의 소통, 손자와 할아버지의 소통인 것이다.
효(孝)는 본질적으로 자식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부모의 뜻이 자식에게 물려지는 것을 말한다. 자식이 부모를 업었다는 것은 곧 ‘봉양’이며, 이는 부모의 집을 상속재산으로 물려받았다는 것과 같다. 부모 봉양은 곧 상속과 동일한데, 요즘은 법정 지분률로 상속이 되므로 부모봉양에 대한 상속의 댓가가 차이가 없다. 효(孝)는 부모의 뜻을 물려받은 자식을 의미한다. 상속재산도 알고보면 상징에 불과하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부모의 뜻이 자식에게 흘러서 그 후손까지 내려간다면 그 가문은 ‘강물처럼’ 유유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효’는 세대간 소통을 의미한다.
교(敎)는 효(孝)와 복(攵)의 합성이다. 복(攵)은 칠 복이라고 하는데, 오른손(又)에 막대기가 있는 모습이다. 攵은 make의 의미이다. ~하게하다, ~가능하게하다의 의미이다. 교(敎)는 가르치다는 것인데, 근본은 ‘효’를 가르치는 것이다. 교육(敎育)은 효도하도록 양육하는 것이다.
가족공동체에서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이 ‘교육’의 핵심인 것이다. 국가공동체에서 국민이 국가의 소중함을 깨닫고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산다면 교육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국가(國家)는 가족이 모인 집단을 의미한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우리가 살아가지만, 국가의 최소단위는 ‘가족’이다. 그래서 가족공동체와 국가공동체는 상당히 닮아있다. 아버지는 대통령, 어머니는 국회의장, 자녀는 백성, 국회와 국무회의는 가족회의, 월급은 예산 등등 상당히 닮아있다. 국가가 안정되려면 법이 바로 서야하고, 가정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효’가 윤활류처럼 작용해야한다.
과거 유교주의가 국가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는 ‘효’를 강압적 통치수단으로 강요했고, 암묵적으로 ‘효’가 홍보수단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열녀비는 대통령 표창과 같은 명예가 있었으니, 열녀비의 추천권을 가진 고을 수령들에게 적절한 로비자금이 동원됐음은 지금 시대로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과연 외부로 보여지는 효(孝)가 진짜 효일까?
효(孝)는 효자 효녀 표창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효(孝)는 아주 단순하다. 老와 子가 합쳐진 글자가 孝이므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자주 연락하는 것이 효(孝)이다. 과일을 먹다가 맛있으면 따로 포장해서 부모님께 보내드리고, 가끔 손편지로 부모님께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것이 ‘효’의 핵이다.
나는 효(孝)의 뜻은 잘 알면서도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다. 내 나이를 젊은 시절 고생으로 점철된 인생을 사셨던 어머니의 세월을 내가 알기 때문에 더더욱 노년의 삶이 행복하길 마음 한편으로 희망하며, 서울에서 행복하고 성실하게 살아감으로 ‘자랑거리’가 되는게 ‘효’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오늘도 묵묵히 살아간다.